-기업경영정보관련 모음입니다.
(GMRI Business Intelligence 2014- 460호, 2014. 8. 24.)
국내외 경제.산업동향
1.노벨상 경제학자들의 불황 해법은 “과감하게 돈 풀어 디플레 막아야 ”
2.'탈TV현상' 심화···모바일·PC 반영 '통합시청률' 도입해야
3.中, 2040년까지 천연가스 수요 3배 이상 급증…美 기업 수혜
4.경제성장하려면 소득 불평등 먼저 해소해야
5.경제학자들 의견이 모두 일치한 곳에 위험이 숨어 있다
기업경영
1."접착제처럼… 人材경영도 연결할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수"
2.제품 콘셉트를 感覺으로 느끼게 하라
3.교황과 잡스, 두 탁월한 리더의 공통점
4.매주 수억명이 시청하는 英 프리미어리그의 6가지 성공 비결
5.[Weekly BIZ][Cover Story] "나를 따르라" 대신" 왜냐하면" 을 말하라
6.통치자는 백성을 믿고 말을 아껴야… 스스로 이루도록 이끌어라
7.프리미엄 먹거리 찾는 소비자 늘어..
8."아마존, 인터넷 광고사업 준비…구글 정조준"< WSJ>
9.[경영전략 트렌드] 고객 짜증 확 줄이는 ‘대기시간의 법칙’
10.빅데이터 활용, 소상공인 자립 지원 … 카드사는 변신 중
11.공포감 키우는 금연 캠페인 … 해법 없나
12.[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1달러 매물’ 크라이슬러, FCA로 새 날개
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1.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2.[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자신감으로 온라인에 새 바람 … 오프라인 세상도 바꿀까
3.[비주얼경제사] 임진왜란으로 전세계 노예무역 확대 … 근거는?
4.“국민과 청와대 사이, 70년대가 훨씬 가까웠지요”
5.[길 위의 인문학] 알고자 하는 인간 본능,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사라지다
6.[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30만 넘던 가양주 기능인, 일제 때 10여 명으로 줄어
7.선진국 증시는 거품, 올가을 주가 추락에 대비하라
8.“세월호 동조단식 2만 명 넘어”
박 두규드림
dgpark5909@hanmail.net
(010-3616-3013, 042-629-6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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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경제.산업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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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 경제학자들의 불황 해법은 “과감하게 돈 풀어 디플레 막아야 ”
23일(현지시간) 스위스와 국경을 맞댄 독일 남부의 작은 마을 린다우. 마을회관 격인 ‘인젤 할레(Insel Halle)’ 건물 앞에서 신자유주의 경제학을 비난하는 시위대 수십여 명이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우리는 영혼을 가진 경제학자를 기다린다.”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 모임인 ‘2014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 참석한 경제학자들에게 불황·실업·불평등 같은 문제에 새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압박과 항의였다. 20일부터 시작해 이날 폐막한 이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8개국) 위기 극복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강하게 제기했다. 유로존 경기침체와 디플레 위험이 심상찮아 미국처럼 양적완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중앙SUNDAY와 만나 “유럽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며 “유럽중앙은행(ECB)이 (한때) 긴축정책을 편 것은 실수로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잘못된 긴축정책은 쓰레기통에 버리고 적극적인 경기부양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업문제 전문가인 피터 다이아몬드 미국 MIT 교수(2010년 수상자)는 22일 연설에서 “유럽이 긴축 위주의 경제정책으로 자멸의 길을 걷고 있다”며 “ECB 관료들은 훗날 역사학자들로부터 질책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로존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양적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주저하지 말고 돈을 더 풀어 위기를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ECB는 시장에서 다양한 자산을 사들임으로써 통화 공급량을 늘리는 양적완화를 아직 실시하지 않고 있다. 양적완화는 통상적인 금리정책을 쓸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시장에 돈을 무제한 풀기 위해 동원하는 비(非)전통적인 정책이다. 이달 초 발표된 유로존의 2분기 경제성장률은 0%였다. 독일은 2분기에 전 분기 대비 -0.2%의 성장을 기록했다. 5개 분기 만의 마이너스 성장이다. 프랑스도 2분기 제자리걸음(0%)에 그쳤고, 이탈리아도 0.2%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마침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주장에 화답을 보내왔다. 그는 22일 미국 와이오밍주 잭슨홀에서 열린 미국 중앙은행 경제정책 심포지엄인 ‘잭슨홀 회의’에 참석해 “필요하다면 추가 조치에 나설 준비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ECB 정책위원회는 비전통적 조치들을 사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가 말한 비전통적 조치의 대표가 양적완화다. ECB는 지난 6월 사상 처음으로 은행이 중앙은행에 자금을 예치할 때 벌칙성 마이너스 금리를 물리는 등 부양책을 내놨으나 경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날로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2007년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는 “세계화는 생산의 절대량을 늘려 개발도상국 중산층에게는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서민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이론을 소개했다. 스티글리츠 교수도 강연에서 “불평등은 이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복지 문제를 넘어 사회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증세 등 과감하고 획기적인 정책 전환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린다우 미팅에 참석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축사에서 “국내총생산(GDP)이나 생산성 같은 지표를 논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독일 정부는 ‘무엇이 국민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정책의 주안점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모임엔 생존해 있는 역대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38명 중 17명과 80여 개국에서 온 450명의 젊은 경제학도들이 ‘경제학은 일상생활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관계기사 4~5p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경제학은 유용한 학문인가 … 석학과 젊은피 ‘열린 대화’
“미국 대학에 갔을 때 노벨 경제학상 받은 교수를 본 적은 있다. 그런데 여기처럼 노벨상 수상자를 한꺼번에 만나는 것이 꿈만 같다.”(독일 대학원생 크리스티안 슈타트)
“당신이 직접 노벨 경제학상을 타지 못하는 한 여기는 일생에 한 번 정도밖에 올 수가 없다. 많은 수상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도록 노력하라.”(2011년 린다우 경제학 회의 참가자)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린다우 경제학 회의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70~80대가 상당수인 수상자들은 청바지 차림에 가방을 메고 회의장을 들어왔다. 전 세계 80개국에서 온 450여 명의 학생은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강연과 토의는 뜨거웠다. ‘경제학은 유용한가’ ‘불평등은 왜 심화하나’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학생들은 식사 자리에서도 책에서만 봤던 대가들의 설명을 하나라도 더 들으려고 귀를 쫑긋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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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린다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에 참석한 학생들이 2007년 노벨상 수상자인 에릭 매스킨 하버드대 교수와 토론하고 있다.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서 강연하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강연료를 받지 않는다. 최고의 경지에 오른 석학들이 무료로 젊은 후학들에게 봉사하는 것이다. 회의 첫날인 20일(현지시간) 강연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수상자는 앨빈 로스 스탠퍼드대 교수였다. 2012년 ‘시장 설계’ 연구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스 교수는 ‘혐오적 시장(repugnant markets)’에 대해 유머를 섞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했다. 혐오적 시장이란 마약·신체 장기처럼 어떤 사람들은 거래를 원하는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부정적인 시각이 있는 시장을 말한다. 로스 교수는 실제 신장 거래를 주선하고 있다. 단 돈은 받지 않는다. 돈을 뺀 장기 시장을 설계한 것이다.
로스 교수는 30여 분에 걸친 강연 말미에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신장 거래에 찬성하면 손을 들어보세요.” 많은 학생이 손을 들었다. 로스 교수는 곧바로 “그럼 기증자가 죽게 되는 심장 거래는 어떤가”라고 질문했다. 손을 들었던 학생들이 황급히 손을 내렸다.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스 교수가 객석에 앉아있던 신자유주의 성향의 시카고대 소속인 라스 피터 핸슨 교수를 가리키며 “그래 시카고. 사람을 죽이자는 거래에 찬성해야지”라고 말하자 더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로스 교수는 마지막 날 토론에서 경제학의 유용성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그는 “경제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며 “연구 환경이 변하고 도전 과제도 변하면서 경제학은 진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매스킨 “리카르도, 이제 은퇴할 때가 됐지”
2007년 수상자인 하버드대 에릭 매스킨 교수는 경제학의 대표적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우위(comparative advantage)’에 반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상대우위 이론대로라면 세계화가 진행되고 무역 장벽이 사라지면서 개발도상국의 소득 격차, 불평등도 줄어야 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 서민들은 여전히 빈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매스킨 교수는 노동시장을 ▶선진국의 숙련된 노동력 ▶선진국의 미숙련 노동력 ▶개발도상국의 숙련된 노동력 ▶개발도상국의 미숙련 노동력으로 나누었다. 세계화가 서비스 산업 위주로 이뤄지다 보니 개발도상국의 숙련된 노동력은 혜택을 보지만 미숙련 노동력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매스킨 교수는 “리카르도는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며 “상대우위 이론 자체가 잘못됐다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피터 다이아몬드 MIT 교수는 미국 상황을 언급하며 경제학의 정파성에 대해 얘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물리학의 경우 민주당 물리학과 공화당 물리학이 따로 없다. 하지만 경제학은 민주당 성향과 공화당 성향이 나뉘며 객관적인 합의를 이루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행사에 초청받은 손석준(서울대 대학원)씨는 “경제학 연구는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연구자가 끊임없이 연구를 유용하게 하려고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이번 모임에 참가해 유로존 국가들이 어렵지만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는 강연을 했다. 그는 ”유로존 18개국의 통화 연합을 운영하는 데는 어려움이 많지만 위기 국가들은 경상수지 적자를 많이 메웠다. 곧 경기가 회복될 조짐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토퍼 심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유로존 정책입안자들이 아직도 유로의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지 못했는데 올바른 길을 간다니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유로의 구조적 문제 해법 못 찾아”
린다우 경제학 회의는 ‘린다우 노벨상 수상자 모임(Lindau Nobel Laureates Meeting)’의 일부다. 이 행사는 1951년 린다우 출신 두 의사인 구스타프 파라데, 프란츠 카를 하인과 스웨덴 백작 렌나르트 베르나도테가 공동 창립했다. 베르나도테 백작은 1905년 제1회 노벨상을 시상한 구스타프 5세 스웨덴 국왕의 손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노벨상 수상자들과 젊은 학자들을 모아 토론하는 장을 만들자는 취지였다. 60여 년간 생리의학·화학·물리학 수상자를 매년 교대로 초청해 행사를 했다. 2000년부터는 5년마다 한 차례씩 학제 간 교류 모임을 했다. 경제학상 수상자 모임은 2004년부터 2~3년에 한 번씩 열려 올해가 다섯 번째다. 모임마다 15~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수백 명의 젊은 연구자들이 초청된다. 노벨상 수상자들이 강연을 하고, 젊은 연구자들과 토론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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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인사를 하는 조직위원장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 [Rolf Schultes/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 초대 집행위원장을 맡았던 베르나도테 백작은 1989년 물러났다. 그 뒤를 부인인 소냐 베르나도테 백작 부인이 이었다. 2004년 백작과 백작 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딸인 베티나 베르나도테 여백작이 자리를 물려받았다. 베르나도테 여백작은 환영사에서 학생들에게 “배우고, 영감 받고, 쌓으라”고 주문했다.
린다우 경제학 회의에 참석하는 학생들은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친다. 세계 각국의 주요 대학, 42개 중앙은행, 수상자 본인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경제학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추천한다. 최종 명단은 린다우 회의가 결정한다. 올해 한국에선 한국은행이 박사급 소속 연구원 2명과 서울대와 연세대 대학원생 2명을 추천해 참석했다. 450여 명 가운데 대부분이 유럽 출신이다. 최근 중국 출신 학생들의 참여가 부쩍 늘고 있다.
독일 최남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에 자리한 린다우는 보덴 호숫가에 있어 휴양지로 손꼽힌다. 인구 2만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할 정도로 아름다워 관광객을 모은다. 린다우 기차역 앞 광장 이름이 ‘알프레드 노벨 플라츠’다. 그만큼 노벨상으로 먹고사는 곳이다. 숙소는 이름은 호텔이지만 실제는 우리의 모텔이나 펜션에 해당한다. 에어컨도 없다. 린다우 미팅도 마을회관 격인 인젤 할레에서 열렸다.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불평등은 국가 발전 최대 걸림돌 … 정치로 풀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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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시위대와 손을 흔들고 인사할 정도로 가까운 스티글리츠 교수는 불평등 개선을 촉구하는 연설을 정열적으로 했다. 그는 “세금은 공평한 사회를 위해 쓸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다”고 주장했다. [Christian Flemming/Lindau Nobel Laureate Meetings] | 조지프 스티글리츠(71)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원조’ 불평등 문제 전문가다. 올 들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각광받기 전엔 그가 불평등 담론을 주도했다. 독일 린다우 회의에서 만난 스티글리츠 교수는 ‘피케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내가 과거에 쓴 책에 비슷한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43세 피케티가 연예인이라면 아버지뻘인 스티글리츠는 영향력으로 승부한다. 세계 각국의 정부와 개발원조단체들이 그에게 조언을 구한다. 혹자는 이런 스티글리츠를 두고 ‘경제’보다 ‘정치’에 매달린다는 비판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당당하다. 불평등의 근원은 시장경제 원칙이 제대로 작용할 수 없게 만드는 정치권력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린다우 회의 첫날인 지난 20일, 대학 세미나실처럼 생긴 작은 기자회견장에서 그와 대화를 나눴다. -새삼 불평등이 화두다. “내가 선견지명이 있었지(웃음). 2002년 발간한 책 『세계화와 그 불만(Globalization and Its Discontents)』이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됐고, 2012년 『불평등의 대가(The Price of Inequality)』도 큰 반향을 불러왔다. 그만큼 불평등이 세계 각국 많은 사람의 중요한 관심사라는 걸 보여 준다. 브라질의 사례를 들고 싶다. 라틴아메리카는 전통적으로 소득 격차가 극심한 곳이다. 그런데 브라질은 불평등이 국가 발전에 가장 심각한 걸림돌이라는 전 국민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보수적인 엔리케 카르도주 대통령조차 보건·교육 분야에 투자했고, 진보의 아이콘인 룰라 대통령은 진보·보수를 넘나들며 혁신적인 정책을 폈다. 그랬더니 지니 계수가 10%포인트 내려왔다. 브라질은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불평등이 시장경제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정책과 정치 때문이란 걸 보여 준다.” -불평등이 화두인 것은 피케티 때문인 것 같다. “피케티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가 불평등이 줄어든 자본주의의 전성기’라고 했다지? 내가 한참 자랄 때였는데 미리 알았으면 좀 더 만끽할 걸 그랬다(웃음). 피케티가 세계 여러 나라의 200여 년에 걸친 데이터를 모은 것은 높게 평가한다. 대단한 공헌이다. 하지만 피케티는 계속 심화하는 불평등이 자본주의의 궁극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장경제 프레임 안에서 더 공평한 사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북유럽의 사례도 있다. 사실 이런 얘기는 내가 이미 1969년에 박사 학위 논문에서 했고, 내 책 『불평등의 대가』에도 나온다. 피케티는 책 제목을 『21세기 자본론』이 아니라 『21세기 정치론』으로 해야 한다.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다.” -최고 80% 누진세율과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하자는 피케티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피케티는 자신의 논리를 잘 정리했다. 글로벌 부유세는 한 나라에서 부자에게 세금을 매기면 다른 나라로 옮겨가는 걸 막자는 취지다. 옳은 취지 아닌가. 하지만 실현하기가 굉장히 어렵고 단기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정치인들을 먹여 살리는 부자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사실 미국과 유럽의 정부들이 징세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미국은 이미 외국에 나가서 사는 자국민에게 세금을 매긴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최대 기업 중 하나인 애플이 직원이 몇 명밖에 없는 아일랜드에 법인을 차려놓고 세금을 안 내려고 하는 건 용납이 안 된다. 이건 기업 윤리의 문제도 아니고 아주 기본적인 시민 의식의 결여다.” -불평등과 함께 이번 린다우 회의의 주제는 경제학이 쓸모 있는가 하는 점이다. “미시경제학은 게임이론의 진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발전이 있었지만 스탠더드 거시경제 모델은 2008년 위기와 경기 침체를 예상하지 못했다. 예상을 못 했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반대되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제일 심각한 문제는 대다수 국가의 중앙은행들이 은행의 역할을 빼놓은 모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냥 통화(通貨)량만 체크하고 있다. 경제에 은행이 없으면 중앙은행은 있겠나. 중앙은행이 역할도 없는 모델로 경기를 예측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두 번째 문제는 기존 경제학이 시장경제에서 불평등이 생기는 걸 당연하다고 보는 점이다. 이 문제는 다행히 상당 부분 해소된 걸로 보인다. 예를 들어 국제통화기금(IMF)은 97년 홍콩 회의에서 개발도상국들에 자본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했지만 2011년에 이르러서는 반대로 열지 말라고 권고했다. IMF도 소득 불평등을 비롯한 자본시장 개방의 폐해를 알게 된 것이다. 경제학의 위기는 다양성 부족 때문이다.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아주 훌륭한 경제학자다. 하지만 경제 위기와 부시 행정부의 수많은 정책오류의 와중에도 “경제학 이론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걸 보고 기절할 뻔했다. 통계만 돌리고 주류만 따져선 경제학은 일상생활과 동떨어지고 계속 틀릴 수밖에 없다. 세계은행이 올가을에 행동경제학·사회학·심리학까지 지평을 넓힌 새로운 경제학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세계 경제는 언제쯤 좋아지겠나. “여기가 독일이니 유럽 얘기부터 하자. 결론부터 말하면 유럽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같은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사실 잃어버린 20년이라곤 하지만 2000년 이후 일본의 지표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다. 유럽이 침체에 빠지면 일본보다 더 심각할 거란 얘기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긴축정책의 부작용을 과소평가했다. 재정에 미치는 영향을 신경 써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아무 영향도 없었다. 성장률은 과대평가했다. ECB의 모델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긴축정책은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 유럽엔 훌륭한 사람들이 많은데 계속 예측이 빗나가고 대다수 회원국에서 문제가 생기면 유로존이란 게 얼마나 잘못 설계됐고 정책은 또 얼마나 잘못 집행되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 같은 지정학적 위험도 있다. 유럽의 경제 전망에 대해 나는 아주 비관적이다. 물론 경제가 나빠지면 사회보장제도가 엉망인 미국 국민의 피해가 제일 클 것이다.” -당신은 세계화 전문가이기도 하다. “기존 경제학 이론은 무역 장벽을 걷어내는 게 좋다고 가르친다. 현재 세계의 관세 장벽은 많이 내려왔다. 요즘 논점은 비관세 장벽(non-tariff barriers)이다. 흔히 각종 규제를 가리킨다. 미국·유럽·아시아 할 것 없이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는데 많은 규제가 소비자를 기업의 횡포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완화해선 안 된다. 20세기 초 서양이 중국에 아편을 강요한 것처럼 지금은 미국의 담배회사들이 세계인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 우루과이가 얼마 전 담배 광고 등을 규제하니까 필립모리스가 우루과이 정부를 WHO에 제소했다. 이해가 안 된다. 우루과이 국민을 죽일 권리를 달라고 제소를 하는 건가. 나는 세계 각국 정부에 절대 미국과의 투자 협정에 서명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국도 많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했는데 실질적으로 무슨 도움이 됐나. 그냥 정치인들이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처럼 쇼를 한 거다. 쇼가 끝난 뒤 정치인 말고 큰 이득 봤다는 사람을 본 적 있나.” ▶스티글리츠 교수 약력 -1943년 미국 인디애나주 게리 출생. 유대인. -앰허스트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컬럼비아대 교수 -클린턴 행정부 백악관 경제자문회의(CEA) 의장 -세계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린다우(독일)=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IMF 정책 비판 글 기고 뒤 세계은행 부총재서 밀려나
린다우 회의가 열린 마을회관 격인 ‘인젤 할레(Insel Halle)’ 건물 앞에선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앞을 지나가면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시위대도 화답했다. 린다우 회의에 참석한 다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가운데 그런 사람은 없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경력은 시위대와 함께 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9년 세계은행 부총재 겸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재직할 당시 시애틀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회의장 앞에서 경제 관련 국제기구들을 비난하는 격렬한 시위가 처음으로 벌어졌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들을 옹호하고 국제통화기금(IMF)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기고했다가 해고됐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자문도 맡았지만 2008년 금융위기 때 월스트리트 은행들을 구제해 주는 것을 보곤 “은행 구제계획을 입안한 사람은 그 은행들과 한통속이거나 무능력하다”며 독설을 내뿜었다. 이런 스티글리츠지만 클린턴 정부 때 백악관 경제자문회의(CEA) 의장을 맡아 중도적인 정책을 만들기도 했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은 ‘비대칭 정보 시장 이론’으로 받았다. 신고전학파 경제학 이론은 ‘제한적이고 극명한 시장 실패를 제외하면 시장은 항상 효율적’이라고 본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그 이론을 뒤집어 ‘시장은 극히 제한적인 경우에만 효율적’이라는 가설을 내놨다. 시장이 불완전하거나 시장 참여자 일방의 정보가 부족하면 경쟁 시장 배분도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전통적 경제학자들보다 정부 개입 가능성을 훨씬 넓혀놨다.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조지 애컬로프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캠퍼스 교수는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남편이다. 스티글리츠 교수는 뉴 케인지언 학자로 분류된다. ‘샤피로-스티글리츠의 정리(定理)’는 왜 시장이 균형에 도달해도 실업이 생기는지, 왜 취업 희망자들이 경쟁해도 임금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지를 설명한다.
논문 인용 횟수로 전 세계 경제학자 가운데 4위이며, 2011년엔 미국 주간지 타임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에 선정하기도 했다. 2011~2014년 국제경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2007년 노벨 평화상을 받은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의 보고서 작성 총책임자로 일하기도 했다.
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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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TV현상' 심화···모바일·PC 반영 '통합시청률' 도입해야
PC나 모바일 기기를 이용한 동영상 시청이 보편화하고 TV시청시간이 급속도로 줄면서 TV시청률을 보완할 수 있는 새 지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TV시청률에만 의존해서는 소비자의 정확한 심리를 파악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23일 닐슨에 따르면 올해 PC, 모바일 기기, TV 등 ‘3스크린’ 동영상 시청 인구는 64.7%로 작년 4분기(58.1%)와 비교해 8.6%포인트나 증가했다. 반면 방송 콘텐츠 소비량이 많은 20∼30대의 일 평균 TV시청시간은 2002년 3.2시간에서 올해 1.4시간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TV가 없거나, 있어도 TV로 방송을 보지 않는 ‘제로(Zero) TV군’의 인구 비율도 6.6%나 되면서 ‘탈TV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TV시청률이라는 고전적 잣대만으로는 프로그램의 시장가치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졌다. TV시청률의 신뢰성이 떨어지면서 미디어 업계에서는 ‘진짜 시청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지표를 속속 내놓고 있다. CJ E&M은 2012년 2월부터 닐슨과 함께 개발한 콘텐츠파워지수(CPI)를 매주 공개하고 있다. 지상파 3사와 CJ E&M의 7개 채널을 뉴스구독 순위(이슈 랭킹), 직접 검색 순위(검색 랭킹), 버즈 순위(버즈 랭킹) 등 3개 항목으로 점수를 매긴 뒤 이를 평균화한 값이다. 지난 8월 첫째주 콘텐츠파워지수 1위는 MBC 월화드라마 ‘야경꾼 일지’. 그러나 같은 기간 닐슨이 집계한 TV시청률로는 같은 프로그램이 18위에 그쳤다. 시청자의 기준을 TV 시청자가 아닌 ‘3스크린’ 이용자로 넓히면 콘텐츠의 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줌인터넷이 지난 5월 내놓은 ‘TV 인터넷 관심도’ 역시 마찬가지. 프로그램을 대상으로 방송 전·중·후에 걸쳐 검색어 입력, 미리보기, 다시보기 등 인터넷 이용자들이 보인 반응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지표화한 수치다. 조사 대상은 지상파, 종합편성채널 등 142개 채널, 프로그램은 860개가 넘는다. 정부도 최근의 TV 시청행태를 반영해 기존의 시청점유율 제도를 개선하려는 작업에 나섰다. 고정형 TV를 기준으로 한 조사방법이 스마트 미디어를 통한 TV 시청시간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달 ‘N스크린 시청점유율 조사 민관 협의회’를 구성했다. 업계에서는 소비자의 미디어 이용행태가 다변화하면서 노르웨이, 스위스, 미국처럼 방송 콘텐츠의 가치를 통합적으로 측정할 ‘통합시청률’ 개념을 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노르웨이와 스위스는 작년 1월부터 시청률 측정 대상을 TV에서 PVR(개인녹화장치)과 PC 웹 등으로 확장했다. 동영상 소비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른 OTT(온라인영상서비스) 시청률도 통합해 ‘숨은 시청자’를 찾겠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의 경우 통합시청률 도입 이후 주요 프로그램 간 순위 변동이 대폭 일어나는 한편 TV 이외의 시청률이 합산되면서 광고 프라임타임 시간대가 넓어지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비즈앤라이프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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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2040년까지 천연가스 수요 3배 이상 급증…美 기업 수혜
중국의 천연가스 수요가 2040년까지 현재의 세 배 이상 급증한다는 전망이 나왔다고 CNBC가 22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이날 미국 원유 관련 매체 오일프라이스닷컴은 미 에너지정보청(EIA) 보고서를 인용, 중국 천연가스 수요가 2012년 현재 5조2000억 큐빅비트(1큐빅피트는 28.57리터)에서 오는 2040년에는 17조5000억큐빅피트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은 급증한 천연가스 수요를 자체적으로 충족시키는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셰일 에너지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개발 관련 기술과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국은 앞서 미국 셰일 열풍을 주도한 미국 에너지 기업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결과적으로 중국의 천연가스 수요 증가가 미국 에너지 기업들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미 핼리버튼 등 미국 에너지 기업들은 중국에 진출, 중국 기업들과 함께 셰일가스 추출기법인 수압파쇄법(프래킹)을 쓰면서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매체는 전했다. [정선미 기자 smjung10@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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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성장하려면 소득 불평등 먼저 해소해야
[헤럴드경제=황혜진 기자]우리나라의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경기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와 가처분 소득 증대 방안을 내걸었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소득 불평등을 완화시킬수 있는 정책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소득 불평등=KB금융지주경영연구소가 최근 내놓은 ‘한국의 소득불평등 추이와 금융포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소득불평등 정도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소득불평등이란 한 사회의 소득분포에서 계층별 격차 정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지니계수, 10분위배율 또는 5분위배율 등으로 측정한다. 계수나 배율이 높을수록 불평등 정도가 심한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1990년 이후 한국의 지니계수는 1990년 0.266에서 2012년에는 0.310으로 높아졌다. 5분위배율 역시 1990년 3.93배였으나 2012년에는 5.76배로 뛰었다. 글로벌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부터는 지니계수와 5분위배율 등 일부 불평등 지표가 개선되는 듯 했지만 최근 상위계층의 소득 집중도가 크게 높아지면서 소득불평등 현상이 금융위기 전보다 악화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국과 비교해도 불평등 정도가 심하다. 통계청 등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우리나라의 상위 10% 소득 비중은 45.51%다. 52%인 미국과 비교하면 낮지만 일본 40.5%, 프랑스 32.69%에 비하면 훨씬 높다.
소득격차도 날로 커지는 추세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990년 1분기 209만7826원에서 올해 1분기 1001만9071원으로 5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10%의 소득은 24만8027원에서 82만449원으로 3.3배 늘었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격차는 같은 기간 8.5배에서 12배로 벌어졌다. 이 격차는 다른 OECD 국가인 독일(6.7배), 프랑스(7.2배), 캐나다(8.92배)보다 높은 수준이다.
▶소득불평등 심할수록 경제성장 어려워=전문가들은 한국의 소득불평등 심화를 경고하고 나섰다. 소득불평등이 심할수록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어렵기 때문이다.
김선태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소득불평등이 심화될수록 ‘재분배 정책에 의한 투자의욕 저하’, ‘사회적 갈등 격화’ 등으로 문제가 생긴다”면서 “이는 결국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는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도 이런 견해가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월 OECD는 ‘소득분배와 빈곤’ 보고서’에서 소득불평등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다며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지난 3월 ‘소득계층간 극심한 소득격차가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한 바 있다. 최근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도 미국의 경제회복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소득 불평등을 지목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의 경제활성화 대책에는 소득 불평등 관련 대책이 빠졌다. 단기적인 경기부양 쪽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기업 돈을 가계로 흘려보내 내수를 부양하겠다는 방향도 소득 불평등 해소 없인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강병구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득주도형 성장체제 특징을 갖는 우리경제 체질을 고려할 때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는 분배정책과 소득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재분배 정책이 필요하다”며 “대기업에 집중된 세제혜택을 축소해 마련된 재원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유도, 근로빈곤층에 대한 지원, 대기업과 중소기업 불공정 거래관행 시정 등을 지원하는게 보다 적절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금융기관도 소득불평등 완화를 위해 제 역할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선태 연구위원은 “저소득층이 이용가능한 제도권 금융상품 및 서비스 개발을 통해 이들이 자산증가로 경기하락에 대비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지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hhj6386@heraldcorp.com ...........................................................................................................................................
[Weekly BIZ] [칼럼 Outside] 경제학자들 의견이 모두 일치한 곳에 위험이 숨어 있다
대니 로드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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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니 로드릭 프린스턴 고등연구원 교수
경제학자들 사이에는 의견 일치를 보이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의견 대립이 이뤄지는 사안들이 많다. 예를 들어 '수입 관세와 쿼터(허용한도)는 후생을 감소시킨다''임대료 통제는 주택 공급을 줄인다''변동환율이 효율적인 국제통화시스템이다' '해외 아웃소싱 규제는 바람직하지 않다'와 같은 것들이다. 물론 경제학자들이 맹렬하게 논쟁하는 공공 정책 문제들도 많다. 소득세율은 최고 어느 수준으로 해야 할까? 최저 임금은 올려야 하나? 재정 적자는 증세 또는 정부지출 축소 중 어느 방법으로 실현해야 하나? 특허권은 혁신을 촉진하는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찬반 양쪽 측면을 모두 고려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 사이에 결론이 쉽게 합의될 것으로 기대되지 않는다. 경제학자들 사이에 공통된 의견이 가능하지만, 때때로 공통된 의견은 특정 에피소드로 한정된 경우이거나 사후적인 근거에 기초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소련의 경제 시스템은 엄청나게 비효율적이었다거나, 오바마의 2009년 경기 부양책이 실업률을 감소시켰다는 의견과 같은 예이다. 그런데 실제 경제학자들 사이에 합의가 되더라도 특정 상황에서만 적용 가능한 모형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광범위하게 합의된 몇 가지 '명제'를 생각해 보자. 예를 들어, 무역 규제가 후생을 감소시킨다는 것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주택가격 규제가 부동산 공급을 감소시킨다는 명제는 불완전경쟁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변동환율이 효율적인지 여부도 금융시스템에 따라 다른데, 최근에는 변동환율이 효율적이라는 주장에 대한 지지가 감소했을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특정 가정이 현실에서 잘 적용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일단 모형을 정립하면, 그것이 다른 모형보다 평균적으로 낫다고 판단한다. 그렇다 하더라고 한계는 인식해야 한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어떤 경제모형을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의견이 일치되었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두 가지에 유의해야 하는데, 먼저 생략에 따른 오류 문제이다. 의견이 일치하고 나면 다른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유발한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거품, 정보비대칭, 동기왜곡, 뱅크런을 분석하는 모형이 없어서가 아니다. 이들이 효율적 시장에 대한 강조에 밀려 주목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특정 모형에 대한 집착으로 실패가 예측되는 정책에 협조하는 오류이다. 신자유주의적인 '워싱턴 컨센서스'와 '금융 세계화'를 옹호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오류로 인해 중대한 문제들을 간과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개혁을 더디게 하고 부작용을 만든다. 다양한 모형이 존재하고 현실을 분석하는 데는 결함이 있을 수 있기에, 경제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다른 것은 건강한 일이다. 특정 지식에 의한 잘못된 생각에 빠지는 것보다는 불확실성에 노출되는 것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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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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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접착제처럼… 人材경영도 연결할 대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게 필수"
뒤셀도르프(독일)=최원석 기자
접착제 세계 1위… 獨 헨켈의 인재 경영
인재 연결 플라스틱·탄소섬유 접착해 강철보다 강한 소재 만들듯 직원들의 다양성 연결해 조직과 개인 모두에게 최선의 것을 추구해야
다양성과 포용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가 다양성 포용이란 레시피 통해 직원들을 하나로 연결 세대간 소통에도 도움"접착과 인재 경영의 공통점이 뭔지 아십니까? 그건 접착하고자 하는 사물과 사물, 서로 연결하고자 하는 인재들에 대해 아주 깊이 알아야만 접착·연결을 제대로 하고 오래 유지할 수 있다는 겁니다." 독일 뒤셀도르프 라인 강변의 한 호텔. '헨켈 이노베이션 챌린지'라는 이름의 대학생 공모전에 전 세계에서 모인 대학생들을 상대로 쿠로시 바라미 접착제 부문 총괄 부사장은 이렇게 말을 풀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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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헨켈의 크리스틴 산체스 마르틴(왼쪽) 다양성·포용 담당 부사장이 헨켈의 다양성을 표현한 예술작품을 동료와 함께 들고 있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예술가 귀도 다니엘에게 의뢰해 만들어졌다. 손가락에 헨켈의 다양한 배경을 가진 직원들을 형상화했다. / 헨켈 제공
헨켈(Henkel)은 살충제 홈키파·홈매트, 세제 퍼실(Persil) 등으로 유명한 독일 생활용품 회사. 그런데 사실 이 회사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부문은 접착제 사업이다. 작년 전체 매출 164억유로(약 22조3000억원) 중 50%를 차지한다. 록타이트(Loctite)가 바로 헨켈이 생산한 접착제 브랜드다(쌍둥이 칼로 유명한 헨켈 사와는 무관하다).
강연이 끝난 뒤 세계 최대 접착제 사업을 이끌고 있는 그에게 접착과 인재 경영의 공통점에 대해 좀 더 물어봤다. 그는 씩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
접착의 기본은 '대상에 대한 이해'
"무엇이든지 '연결'이라는 것을 할 때는 연결할 상대와 상대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한쪽만 이해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처음에는 괜찮아 보일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생깁니다. 나중에는 아주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지요. 자동차나 비행기 같은 안전과 관련된 제품이라면 생명과 관계되는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성원들을 깊이 이해해야만 합니다. 어떻게 연결할지 연구하지 않으면 당장은 괜찮아 보일지 몰라도 나중에 조직 전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겠지요."
그런데 접착하는 대상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일까. 그는 "접착이 아주 오래 지속돼야 할 경우나 접착 부위에 상당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는 경우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자동차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최신 자동차는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도와 안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차체 부위에 따라 다양한 소재를 사용합니다. 구조물의 어떤 부분에는 강철이 사용되지만, 어떤 곳에는 알루미늄, 어떤 곳에는 탄소섬유, 어떤 곳에는 플라스틱이나 유리가 사용되지요. 또 각 소재도 기본적으로는 같은 소재이지만 특성이 조금씩 다릅니다. 접착제는 이런 표면 재질이 다른 이종(異種) 물질을 붙인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일을 합니다. 우선 소재 표면의 특성이 다르겠지요. 소재에 따라, 열의 높고 낮음에 따라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정도도 다를 겁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화되는 속도도 제각각입니다."
그는 "알루미늄과 강철을 붙이는 접착제가 따로 있고, 플라스틱과 탄소섬유를 붙이는 게 따로 있는 식으로 붙이려는 소재에 따라 수많은 접착제가 필요하다"면서 "자동차의 형상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유지하도록 구조물을 접착하는 데만도 수많은 이종 물질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프레젠테이션에서 마법과 같은 기술을 보여줬다. 즉 손으로 휠 수 있을 만큼 강도가 약한 플라스틱 소재 표면에 탄소섬유를 접착해 강철보다 훨씬 가벼우면서 강도는 더 뛰어난 신소재를 보여줬다. 그는 이런 소재 간의 접착 기술을 통해 각각의 소재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전혀 다른 수준의 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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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켈의 진짜 경쟁력은 인재 연결
금속 소재를 연결할 때 가장 손쉬운 방법은 용접이다. 그러나 용접이란 열로 금속을 녹인 뒤 압력을 가해 붙이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소재에 스트레스를 주게 된다. 특히 알루미늄과 강철처럼 서로 특성이 다른 금속을 용접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열과 압력이 발생할 때 알루미늄 쪽이 약하기 때문에 알루미늄에 변형이 갈 수 있다. 또 이렇게 서로 다른 금속을 붙여 놓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부식이 일어난다.
헨켈이 연구하는 건 어떻게 하면 대상에 스트레스를 덜 주면서 최선의 결과물(접착)을 이끌어 낼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렇게 하기 위해 접착 방법이나 접착제의 성분·특성을 연구하고, 또 수많은 접착제를 섞어서 기존과 다른 특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인재 연결도 마찬가지다. '다양성과 포용(Diversity & Inclusion) 담당 부사장'이라는 독특한 직함을 갖고 있는 크리스틴 산체스 마르틴씨는 "헨켈의 경영은 직원들의 다양성을 어떻게 연결해 개인이나 조직 양쪽에서 최선을 이끌어낼 것인가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다양성과 포용 담당 부사장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했다. 그는 "헨켈에서 매우 중요하며, CEO를 포함해 그 어떤 직원도 조직의 첫째 가치로 삼아야 하는 덕목"이라고 말했다.
"산체스 마르틴이라는 제 성(姓)을 들으면 많은 사람은 흑발의, 그리고 눈동자 색이 어두운 사람을 떠올릴 겁니다. 머릿속에 어떤 고정관념이 있는 거죠. 그러나 저는 100% 독일인으로 멕시코인과 결혼한 여성일 뿐입니다. 우리는 고용이나 승진 등에 대한 결정을 고정관념과 편견에 기초해 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건 기업 경영에서 매우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히 상대의 외양만 보고 그런 결정을 내리면 좋은 자격을 가진 사람을 놓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틴 부사장은 다양성을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차이"라고 정의했다. 외모나 성별 같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실제적인 차이'를 만들 수 있는 생각, 경험, 지식이 다양성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요리의 레시피와 같습니다. 모든 재료가 회사에 모여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 모든 재료를 활용해 멋진 음식을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재료를 결합해 한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레시피, 즉 공통 주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포용'이라고 합니다. 다양성과 포용 두 가지가 헨켈이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한 핵심 가치입니다."
헨켈 직원의 국적은 120곳에 이른다. 앞서 만났던 바라미 부사장은 이란인이며, 바로 밑 직원은 브라질인이라고 했다. 또 마르틴 부사장을 비롯해 여성들이 관리자급에 대거 진출해 관리자급 가운데 여성 비율이 32%에 이른다.
매년 전 직원이 다양한 문화 체험 행사
헨켈은 1년에 한 번 '다양성 주간'이란 행사를 가진다. 다른 문화, 다른 음식, 다른 나라에 대해 공유하는 시간이다. 직원들이 경험해 볼 수 있는 300가지 활동이 있다.
올해는 지난 6월 23일부터 27일까지 한 주 동안 시행됐다. 뒤셀도르프 본사에서는 월드컵 시즌과 연계해 손가락 축구 게임(finger football)을 직급·연령·성별에 상관없이 팀을 짜 진행했다. 세제·홈케어 부문 글로벌 마케팅팀은 국적이 다양한 직원들이 국가별 대표 음식을 요리해 회사로 가져와 서로 나눴다.
그녀는 다양성과 포용은 나이 든 세대가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부연했다.
"저는 전화기가 무엇인지 압니다. 하지만 제 딸은 잘 모릅니다. 전화기 대신 아이폰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제 딸에게 전화기란 단순히 집 한구석을 차지하는 물건일 뿐입니다. 또 저는 예전에 사무실에서 텔렉스를 사용했지만, 요즘 세대는 뭔지 모르겠지요. 이처럼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은 세대마다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회사 내에서도 이러한 스타일 차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르틴 부사장은 "헨켈이 다양성을 강조하는 것은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헨켈은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해 더 큰 독일 도시로 이전했고 더 나아가 유럽, 전 세계로 확장해 왔습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 여기서 열린 '헨켈 이노베이션 챌린지' 행사를 보세요. 헨켈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생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뽑힌 20여 팀이 최종 결선에 와 있습니다. 한국도 있고, 중국도 있고, 인도·말레이시아 대학생도 와 있습니다."
이 공모전의 주제는 '2050년 헨켈이 내놓아야 할 제품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각 나라 헨켈 지사 직원이 멘토로 참여해 아이디어를 키우는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날 행사에 캐스퍼 로슈타드 회장(CEO)이 나와 1시간 동안 대학생들에게 강연하고 질의 응답을 했다. 그는 "혁신이란 장기적 비전을 가져야만 일어날 수 있는데, 그것이 없으면 혁신이 일어나지 않게 되어 오로지 가격 경쟁에 돌입하고 되고, 결국 패배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설 말미에 "다양한 세계를 경험해 보라"고 대학생들에게 조언했다. "여러분이 그 경험을 쌓고 오는 동안 여러분의 나라는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들이 왜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이 앞으로 전 세계를 무대로 일할 때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르게 지닌 가치를 이해하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 좋은 리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
헨켈은 이런 회사
헨켈은 접착제, 세제·홈케어, 뷰티케어 등 3개 사업 축을 갖고 있다. 접착제 세계시장 점유율 1위이지만 기업 납품이 많다. 세계 125개국에 진출해 있고 직원은 4만7000명. 1876년 설립됐으며, 1980년 헨켈 가문 출신의 마지막 CEO였던 콘라트 헨켈 박사가 CEO 자리를 내놓고 경영감독위원회 의장 겸 주주총회 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재는 이 자리를 5세손이 맡고 있다.
캐스퍼 로슈타드 현 CEO는 덴마크인으로, 헨켈 138년 역사상 비(非)독일어권에서 영입된 최초의 CEO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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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김근배 교수의 '콘셉트 경영'] 제품 콘셉트를 感覺으로 느끼게 하라
김근배 숭실대 경영학과 교수
- 락앤락의 교훈 100% 밀폐 보여주려 지폐 담은 통 물에 넣어… 소비자에 강한 인상 줘
- CJ 어묵의 경우 본질의 변화는 없는 채 포장色 바꿔 매출 급락… 원모습 돌아가자 부활지난 4월 1일 당시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 앞으로 당사를 옮기고 당명을 바꾸고 당의 상징 색도 노란색에서 파란색으로 바꿨다. 2013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도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당 상징 색을 파란색에서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여론은 냉소적이었다. 콘셉트 없이 포장(상징)만 바꾸려 했기 때문이다. CJ제일제당이 삼호어묵을 인수한 뒤 가장 잘 팔리던 '부산어묵'의 포장을 고급스럽게 개선한다고 빨간색을 검정색으로 바꾸었는데, 오히려 매출이 떨어졌다. 오랫동안 봤던 포장 색깔이 확 바뀌자 소비자는 내용물도 바뀐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포장 색을 원래의 빨간색으로 바꾸자 매출이 원 상태로 회복됐다. 마케팅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것은 바로 소비자의 인식이다. 칸트는 "감각이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감각은 맹목적이다"라고 했다. 인간이 무엇을 인식할 때 감각 경험과 콘셉트는 서로 뗄 수 없는 하나로 인식한다. 어묵 사례에서 포장의 급격한 변화를 소비자는 제품 콘셉트에 대한 변화로 받아들였다. 당명이나 당기(黨旗), 당의 색깔은 유권자의 감각적 경험을 도와주는 상징이고 이것이 정당이 지향하는 콘셉트인 정강 정책과 하나여야 한다. 상징은 그 내용에 해당하는 정강 정책의 감각적 표현이다. 정강 정책을 바꾸고 그와 동시에 당명이나 상징 색에 대한 변화를 설명해야 유권자의 이해(인식)를 얻었을 것이다. 정강 정책에 대한 이야기 없이 당명이나 색깔만 먼저 바꾸니 유권자가 의아해 했던 것이다. 기업도 회사 로고나 사명을 바꾸기도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반드시 새로운 비전을 수립하여 대내외에 공포한다. 비전이란 다름 아닌 그 회사가 지향하는 콘셉트다. 기업이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 확장하여 업(業)의 개념이 바뀌는 경우, 사명이나 로고가 바뀐다. 이때 브랜드명만 바꾸는 게 아니라 제품의 내용에 해당하는 품질력을 '동시에' 개선하고 나서 출시해야 효과가 생긴다. 달라진 제품 콘셉트와 달라진 품질과 브랜드명에 대한 감각 경험이 결합해야 소비자에게 새로운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브랜드의 성공도 콘셉트와 감각 경험이 하나가 되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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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락앤락이 미국 홈쇼핑 광고에서 화제를 모았던 용기 속 젖지 않는 지폐 장면./락앤락 제공
밀폐 용기의 대명사인 락앤락(Lock & Lock)'은 처음부터 잘나가는 기업은 아니었다. 1999년 처음 제품을 출시했을 때만 해도 소비자 반응은 냉담했다. 출시 당시 콘셉트는 '100% 새지 않는 완벽한 밀폐력'이었지만 매출은 저조했다. 반전의 계기는 2001년 미국에 진출해 미국의 홈쇼핑에서 소개된 이후다. 미국 홈쇼핑 담당자는 100% 밀폐가 되는 것을 보여주면 잘 팔릴 것으로 생각하고 '물속에서도 젖지 않는 지폐'란 광고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방송에서 락앤락 용기 가득 지폐를 담고 검정 잉크를 잔뜩 풀어둔 수조에 넣었다가 잠시 후 도로 꺼낸 후 용기 속에 들어 있던 지폐가 하나도 젖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방송이 나간 뒤 준비해둔 5000세트가 순식간에 동났다. '100% 완벽한 밀폐력'이라고 언어로만 되어 있던 콘셉트가 소비자 감각을 통해 확인된 것이다. 락앤락의 성공에 자극을 받은 한 후발 주자 업체는 '100% 밀폐'라는 콘셉트에서 한발 더 나아가 '밀폐는 기본에 항균까지!'라는 콘셉트로 제품을 출시했다. 콘셉트만 비교하면 분명히 진일보한 콘셉트이었지만, 반응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진일보한 콘셉트인 '항균 기능'을 소비자가 감각을 통해 느끼도록 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올갱이국을 잘하는 가게가 맛집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적이 있다. 주인 할머니가 갑자기 달걀을 풀더니 그 위에 올갱이를 올려놓는다. 리포터가 뭐하느냐고 묻자 "이렇게 해야 올갱이가 위로 뜨는 걸 알 수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올갱이가 가라앉지 않고 달걀 물위에 뜨도록 해 손님이 직접 두 눈으로 올갱이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올갱이국집 주인 할머니는 칸트를 공부하지 않고도 "감각 경험과 콘셉트가 하나여야 한다"는 것을 터득하고 있었다. 한국의 정당 지도자나 마케터들이 한 수 배워야 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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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김호·유민영의 '새로운 발견'] 교황과 잡스, 두 탁월한 리더의 공통점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 5가지 유사한 일 스타일
① 심플디자인·가난한 교회… 혁신 방향 뚜렷하게 제시
② 일관된 모습으로 반복… 원하는게 뭔지 명확하게 해
③ 실행은 과감, 진심으로… 대충 시도만 하는건 안통해
④ 다르게 생각하기 실천… 통념을 깨는 것에서 성장
⑤ 공감받는 소통법 추구… 받아들이는 상대를 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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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유민영 에이케이스 대표
고수(高手)끼리는 통하는 법이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스티브 잡스와 프란치스코 교황도 말이다. 두 사람은 각각 2010년과 2013년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로 꼽혔다. 잡스는 CNBC, 교황은 '포천'지가 꼽은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였다. 두 사람은 혁신가다. 한국에서 화제를 몰고 다닌 교황에게 경영자들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바로 혁신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마케팅 전문가로서 17년 넘게 스티브 잡스를 도왔던 켄 시걸의 저서 '미친 듯이 심플'을 보면 스티브 잡스와 교황이 일하는 방식 사이에 몇 가지 유사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 ①뚜렷함과 상징하수(下手) 경영자들은 "혁신해야 한다"고만 외친다. 고수(高手)들은 그 혁신의 방향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준다. 잡스에겐 '심플한 디자인'이고, 교황에겐 '가난한 교회'다. 두 사람은 모두 취임 초부터 혁신의 방향을 단순화하고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켄 시걸은 명확함이 조직을 변화하고 전진시킨다고 말한다. 뚜렷하게 보여주는 방법의 하나는 상징을 활용하는 것이다. 조지 오웰의 '1984'를 패러디한 애플의 광고 캠페인은 스티브 잡스가 상징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잘 보여준다. 교황 역시 2013년 선출 당시 청빈의 삶을 상징하는 '프란치스코'를 즉위명으로 정함으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리더십 어젠다가 무엇이며 개혁의 방향이 무엇인지 명확히 했다. 이건희 회장이 불량 제품을 쌓아놓고 화형식을 펼친 상징적 이벤트를 통해 품질에 대한 그의 의지를 직원들에게 명확하게 알려주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②반복과 일관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기간 중 입국 순간부터 매일 세월호 유족을 만났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시복식을 위한 카퍼레이드를 하던 중 유가족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약자와 희생자 편에 선다는 걸 반복해 몸으로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뜻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한다. 반복이 중요한 이유는 혁신에 일관성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잡스는 제품 디자인에서만 단순함을 추구한 게 아니었다. 프레젠테이션에서부터 회의 방식, 웹사이트 디자인과 광고 캠페인에 이르기까지 단순함의 철학을 반복했고, 일관되게 나아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르헨티나 사제 시절에서부터 교황이 된 이후에도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검소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영자들은 각종 행사나 인터뷰, 연설을 통해 많은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이를 꾸준히 반복해 일관성을 만들어내는 리더는 소수다. ③'과감'과 '진심'교황은 방한 기간 중 78세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강행군을 계속했다. 앉아있기보다 서 있었고, 장애인들과 약자들을 만날 때면 진심으로 어루만져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어떤 일정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다. 또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요청은 조정을 거치지 않고 과감하게 수용했다. 이러한 행동은 사람들에게 그가 진심을 다해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신뢰를 만들어낸다. 기업에서 혁신이 실패하는 이유는 '과감하게' 실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켄 시걸은 많은 기업이 애플처럼 단순화 혁신을 하지 못하는 건 조직 내 특정 영역에서만 시도하는 정도로 그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혁신의 방향이 정해지고 나면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모든 분야에서 실행에 옮겨야 한다. 스티브 잡스에게 '거의 했다'라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가 정한 혁신의 기준은 타협 불가능했다. 과감하게 진심으로 실행하지 않으면 혁신하는 것이 아니다. ④다르게 생각하기애플의 유명한 광고 슬로건인 '다르게 생각하기(think different)'는 애플의 정신 그 자체였다. 그는 전화와 음반 시장, 컴퓨터를 새롭게 해석해 아이폰·아이튠스·아이패드를 히트시켰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황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있다. 그는 방한을 앞두고 한 잡지 인터뷰에서 "다른 이의 믿음을 존중하고, 개종시키려 들지 말자"고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말이 아닌 삶 속에서의 실천을 통해 사람들을 매혹하는 것이 교회의 진정한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무신론자에 대해서도 "그 사람만이 가진 인간성을 심판할 권한이 나에게는 없다"면서 예수를 안 믿고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지옥에 간다는 의견들과 거리를 두었다. 심지어 동성애자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다. ⑤인간적으로 소통하기독설가인 잡스가 인간적으로 소통했다는 데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파워포인트에 글자만 빽빽하게 담거나, 뻔한 이야기로 회의나 행사에서 연설하는 경영자들과, 글씨는 거의 쓰지 않고 주로 그림을 통해 단순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던 스티브 잡스 중 누가 더 인간적인 소통을 했는지. 일반 소비자는 이해하기 어려운 온갖 제품 스펙을 나열하는 것보다 1세대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주머니 속의 노래 1000곡"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스티브 잡스는 사람들이 "매일 사용하는 언어"를 가장 인간적인 단어라 보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교황은 2013년 한 연설에서 "대화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뭔가 좋은 것을 갖고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해미 순교성지에서 아시아 주교단에게는 "공감하는 능력이 진정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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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매주 수억명이 시청하는 英 프리미어리그의 6가지 성공 비결
존 듀어든 축구칼럼리스트
영국 프리미어리그 새 시즌이 개막했다. 프리미어리그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축구 리그이며, 매주 수억명이 이 경기를 시청한다. 그러나 25년 전만 해도 프리미어리그 인기는 이 정도는 아니었다. 뭐가 달라진 걸까. ①중계권료
원래 BBC나 ITV 같은 지상파 방송국은 가끔 1~2경기만 방송했을 뿐, 상품 가치를 몰라봤다. 그러나 신생 위성채널인 스카이(SKY)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거의 전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했다. 대신 시청자들에게 수신료를 거뒀다. SKY에서 프리미어리그에 지불한 중계권료는 각 구단 재정 상태를 호전시켰고, 구단들은 이 돈으로 유명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 결과 수준이 높아지고 리그 인기는 상승 가도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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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
②공정한 분배제도
스페인에서는 TV 중계권료를 구단이 직접 파는 구조다. 레알 마드리드나 FC바르셀로나 같은 '빅 클럽'들이 다른 군소 구단들보다 더 많은 중계권료를 벌 수 있다는 의미다. 재정적으로 불균형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리미어리그는 리그 전체 중계권료를 통째로 팔고 구단끼리 성적순에 따라 나눠 갖는다. 리그에서 우승한다고 해도 최하위보다 50%가량 많은 중계권료를 받을 뿐이다. 레알 마드리드나 FC 바르셀로나는 하위권 팀보다 1000%나 많은 돈을 번다. 결국 프리미어리그는 하위권이라 해도 뛰어난 선수를 영입할 수 있는 재정 능력을 확보하게 됐고, 이는 리그 전체 수준을 상승시키는 요소다. ③뛰어난 마케팅 능력
현재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 리그 담당자들은 프리미어리그의 성공 비결을 배우기에 바쁘다. 프리미어리그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리그는 아닐 수 있지만 적어도 세계에서 가장 관심을 많이 끄는 리그임에는 틀림이 없다. 프리미어리그 구단들은 일찌감치 아시아 시장을 주목했다. 여름에는 아시아 투어에 나서서 친선경기를 펼쳤고, 팬미팅 시간도 가졌다. 심지어 경기 시간을 조정해 현재 경기는 영국 시각으로 낮 시간대에 진행되는데, 이는 아시아 팬들에게는 편히 시청할 수 있는 저녁 시간대다. 25년 전만 해도 프리미어리그는 일부 축구광(狂)만 열광하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④세계시장에 주목
유튜브에서 SKY 광고 캠페인을 찾아보면, 출범 이후 매년 광고 스타일이 달라져 왔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조금씩 국제적인 측면을 더 강조해왔고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데 초점을 맞춰온 것이다. 프리미어리그는 그 어떤 리그보다도 외국인 출신 선수 비중이 높은데 이는 사실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미국과 아프리카, 한국 팬들을 끌어모으는 데는 훨씬 더 효과적이었다. ⑤영어의 힘
프리미어리그가 뜬 건 영어가 인터넷, 경제, 소통 수단에서 세계어로 정착하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독일이나 스페인 리그보다 더 유리한 측면이다. 아시아 축구 팬들은 비록 이탈리아어는 못 읽어도 영어는 대충 읽을 수 있다. ⑥팬 친화적인 구장
프리미어리그 구장은 경기장과 관중석이 무척 가깝다. 경기장을 찾은 팬들은 더 빠르고 강렬하며 공격적인 장면을 자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방송도 마찬가지다. 관중석 옆에 놓인 카메라는 경기장의 역동적인 모습을 바로 앞에서 담아낸다. 화면으로 보는 팬들도 더 열광할 수 있는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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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Cover Story] "나를 따르라" 대신" 왜냐하면" 을 말하라
뉴욕·옥스퍼드=오윤희 기자
세계적 전문가 3인이 꼽은 '리더십의 요건'
'무엇을' '어떻게' 아닌 '왜'에서 출발을… '왜 이 일을 하는가' 가치관 공유해야
21세기는 리더와 팔로어의 힘 역전돼 공감하고 존중… 명령 아닌 제안해야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는 美해병처럼 사리사욕을 희생해야 진정한 리더요즘 한국 사회의 화두(話頭)는 리더십이다. 사람들은 영화 '명량'에서 나타난 이순신 장군의 리더십과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겸양의 리더십에 감동했다. 이는 역설적으로 리더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 때 승객 475명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한 선장, 사후 수습에 우왕좌왕했던 정부와 정치권은 실패한 리더십의 전형(典型)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렇다면 리더십을 되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위클리비즈는 세계적인 리더십 전문가 세 명을 만나 '21세기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그들의 답변은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왜라고 묻는 것', '공감', '존중'이 그것이다. 경영 사상가 사이먼 사이넥씨는 리더의 존재 이유를 '왜(why)'에서 찾는다. 리더란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뚜렷이 정의하고, 조직원들과 끊임없이 공유하는 사람이란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 많고, 많고, 많은 대화를 해야 합니다. 리더가 비전에 대해서 조직원들과 계속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입니다. 많은 간부가 자신이 이것을 굉장히 잘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자주 이야기하지요. '우리의 비전은 큰 매출을 올리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은 업계 최고가 되는 것이다'라고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사실 비전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단순히 금전(gold)일 뿐입니다. 비전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볼 수 있는 것이라야 합니다. 그 비전이라는 것은 '만약 우리가 성공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라고 종이에 그려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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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티이미지 멀티비츠
리더의 가장 큰 자질 가운데 하나는 이러한 비전을 가장 잘 제시하고, 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조직원들이 왜 매일 아침마다 일어나서 회사에 나와야 하는지, 왜 자신들이 그러한 비전을 구축해 나가는 데 동참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겁니다." 이런 내용을 담아 2009년 TED에서 한 강연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Start with why)'를 전 세계 850만명이 시청하게 한 그의 웅변이 뉴욕의 한 식당에서 다시 열을 뿜었다(그는 같은 이름의 책도 펴냈다). 사이넥씨는 '왜'라는 개념을 '골든 서클(golden circle)'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종이에 세 개의 동그라미를 그린다. 작은 동그라미를 그린 뒤 그 동그라미를 포함하는 더 큰 동그라미를 그리고, 그 둘을 품는 가장 큰 동그라미를 하나 더 그린다. 가장 안쪽에 있는 동그라미, 즉 핵심이 '왜'다. 가운데가 '어떻게', 그리고 제일 바깥쪽 동그라미가 '무엇을'이다. 기업에 비유하자면 '왜'는 가치관, '어떻게'는 비즈니스모델, '무엇을'은 제품을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과 기업은 '어떻게'나 '무엇을'에만 신경 씁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리드하는 것은 '왜'의 힘입니다. '왜'는 사람들에게 그 일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영감을 북돋워주니까요. '왜'에서 출발해 '어떻게'와 '무엇을'로 나아가야 합니다." 세월호 선장에게는 '왜'가 없었다. 그래서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뒷전으로 하고 혼자 배를 떠났던 것이다. 올해 나온 사이넥씨의 두 번째 책 이름은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Leaders Eat Last)'이다.사이넥씨가 미국 해병대의 한 장군에게 "해병대는 어떻게 탁월한 성과를 거둡니까"라고 묻자, 장군은 "장교가 마지막에 먹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미 해병대에서는 이등병이 가장 먼저 식사를 하고, 최고 선임 장교가 가장 나중에 먹는다. 누가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체가 조직 문화다. 이 간단한 행동 속에 리더십을 보는 해병대의 시각이 깔려 있다. 자신이 이끄는 사람들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사리사욕을 희생할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야말로 리더다. 영국 옥스퍼드대가 있는 옥스퍼드시에서 만난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씨는 리더의 조건으로 공감을 들었다. 그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삶의 의미를 가르치는 '인생 학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공감하는 능력(Empathy)'이란 책을 이달 국내 출간 예정이다. "세상 누구도 자신이 그저 업무에 필요한 부품이나 수치로 여겨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상사가 부하와 그 가족들의 이름을 아는 작은 일 하나만으로도 공감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일터를 인간적인 공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중동 같은 분쟁 지역에서도 분쟁을 끝내는 방법은 적으로 마주한 이들이 서로를 알고, 어울리게 하는 겁니다. 상대편이 괴물이 아니라, 나와 마찬가지로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적대감과 공포가 줄어드니까요." 뉴욕에서 만난 바버라 켈러먼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리더십의 종말'을 주장하며 같은 이름의 책을 썼다. 리더십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리더와 팔로어(follower)의 힘의 역학이 역전됐다는 것이다. 50년 전만 해도 미국에서조차 남편은 아내를 지배해야 마땅하며, 아내는 남편을 따라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지금 아내는 상대적으로 힘이 세지고 남편은 약해졌다. 리더와 팔로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최근까지만 해도 리더가 지배하고 팔로어가 순종해야 한다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 팔로어들은 기혼 여성들처럼 더 힘이 세고, 더 강하고, 더 독립적으로 변했다. 따라서 리더는 그저 명령만 해서는 안 되고, 팔로어를 존중하고 따라올 것을 제안하고 권유해야 한다고 켈러먼 교수는 말했다. '왜'와 '공감', '존중'은 최근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소 강론에서 자주 하는 말과도 일맥상통한다. "내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인생이란 선물이 이유가 있음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는 말은 '왜'를 이야기한다. "거지들에게 동냥을 줄 때 그 사람의 눈을 봤는지요? 아니면 손이라도 잡아봤는지요? 눈을 맞추고 손을 잡는 것이 그들과의 진정한 만남이 이뤄지는 순간입니다"라는 말은 약자에 대한 '공감'을 강조한다. "다름이 충돌의 원인이 아니라 다양성의 선물이 될 수 있게 하자"는 말은 차이에 대한 '존중'을 말한다.
[Weekly BIZ][Cover Story] '왜'를 알아야 진심으로 움직인다
옥스퍼드(영국)=오윤희 기자
'왜'는 돈·명성 아닌 가치·신념 훌륭한 리더는 '창업의 목적' 알려주고 조직원들이 그 속에서 긍지 갖게 해야'
왜'를 부활시키며 부활한 디즈니 "돈벌이보다 즐거움·재미가 우선돼야" 디즈니 설립 정신 직원들에게 일깨워… 장기적으로 이익… 침체서 再建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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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영 사상가 사이먼 사이넥
[리더십의 요건] ① 경영 사상가 사이먼 사이넥의 '왜'
사이넥 〈사진〉씨는 원래 포천 500대 기업 중 몇 곳을 고객사로 확보한 성공적인 마케팅 전문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자신이 일터에 가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을 괴로워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저는 그 사실이 당황스러웠습니다. 표면적으로 봤을 때 저는 행복해야 했거든요.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고, 돈도 잘 벌렸고, 매우 훌륭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왜 일하는 게 행복하지 않은 건지 스스로 이해가 안 됐어요. 저는 일에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털어놓지 못했어요. 제 인생에서 정말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다가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너 괜찮은 거니?'라고 물어봤습니다. 저는 그때 '괜찮지 않아'라고 말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제가 괜찮지 않다는 이야기를 터놓고 하게 됐고, 그런 대화를 몇 차례 거듭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가진 문제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나는 내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고 있었고, '무엇을' 하는지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왜' 하는지는 몰랐던 겁니다. 그렇게 해서 책에 쓴 '골든 서클'을 발견하게 된 거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저의 새로운 '왜'가 됐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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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일하는지 몰라 방황
그를 만난 건 식료품 가게 위층 허름한 식당 겸 카페에서다.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나타났다. ?'왜'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합니까?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성공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면 원래 처음 시작한 본래 뿌리에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왜'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조직원들에게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계속 상기시켜 주는 겁니다. '왜'를 계속 유지하는 또 다른 좋은 방법으로는 훌륭한 리더를 가지는 겁니다. 훌륭한 리더는 기업의 과거와 현재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월트 디즈니는 '즐거움과 재미를 안겨주자'는 목적에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월트 디즈니가 죽고, 마이클 아이스너가 뒤를 이어받은 뒤 디즈니는 성장과 몸집 키우기, 지배력에만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그 결과 잃어버리게 된 것은 '핵심'이었지요. 밥 아이거 현재 회장은 재임 직후 '과거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사원들을 독려했습니다. 그는 디즈니의 사업 포트폴리오에서 디즈니의 설립 가치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는지 살펴본 뒤 원래 디즈니가 추구하던 '왜', 즉 '재미'와 방향이 맞지 않는 사업 부문은 과감히 정리했습니다. '왜'와 맞지 않는 사업이 장기적으로 이익을 가져오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의 리더십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어떠한 결정을 내릴 때 단순히 그것이 '훌륭한 비즈니스 기회'라는 것에만 기반을 두지 않고, 그것이 디즈니의 '왜'와 방향을 같이하는 것인지에 항상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디즈니처럼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경우엔 회사가 여러 방법으로 '왜'의 뿌리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창업 당시 상황을 알려주는, '왜'를 전달해 주는 많은 문서가 있을 겁니다. 또 '왜'가 생생하게 작동했던 당시에 근무했던 사람들, 창업자와 가까웠던 이들, 아직 '왜'를 잃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들에게 가서 우리 회사의 잃어버린 '왜'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끌었는가를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돈이나, 명성이나, 운이 아닙니다. 그것은 신념입니다. 100명 중 99명의 확률로, 사람들은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던 중 가까운 다른 이들과 고민을 나누다가 같이 회사를 만들게 됩니다. 그들이 처음 창업을 하게 됐던 근원을 찾아야 합니다."
'왜'로 다시 돌아간 디즈니?디즈니 외에도 '왜'를 잘 지킨 회사 사례를 든다면요? "아웃도어 회사 파타고니아도 좋은 예입니다. 이본 쉬나드 회장은 자신이 처음 시작한 목적과 '왜'에 매우 충실하게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돈 버는 걸 목적으로 하기보다 자연과 교감하고,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것을 중요한 기업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죠. 요가복을 만드는 캐나다의 룰루레몬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또 코스트코가 있습니다. 이 회사는 언제나 '사람'을 가장 앞세웁니다. 하지만 그들은 월스트리트를 무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의 경제적 논리는 언제나 직원들의 복지에 쓰는 돈을 줄이기를 강요하고, 고객보다 먼저 주주에게 신경을 쓰도록 강요합니다. 하지만 코스트코는 고객을 주주보다 우선으로 했고, 직원들을 우선시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땠느냐고요? 그들은 경기 불황에도 지속적인 성장을 했습니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성장률에서 GE를 앞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이넥씨는 소비자를 설득하는 데도 '왜'가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은 회사들이 제시한 '무엇을'을 보고 구매하지는 않는다. '왜'에 마음이 동해 구매한다. 제품 설명서에 아무리 좋은 스펙이 나열돼 있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구매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머리로 구매하지 않고, 가슴으로 구매한다. 사이넥씨는 이런 메커니즘을 뇌의 진화에서 찾는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에서 마지막으로 출현한 영역은 신피질이다. 그가 주장한 골든 서클의 '무엇을'에 해당한다. 골든 서클의 가장 안쪽 부분 즉 '왜'는 변연계(邊緣系)를 구성한다. 변연계는 신뢰와 충성심 따위의 모든 감정을 담당한다. 사람은 변연계에 의해 일단 결정을 한 다음 단계에서야 신피질 수준에서 상세 정보를 검토한다. 따라서 종업원이든 소비자든 사람을 설득하고 신뢰를 심어주려면 '왜'에서 출발해야 한다. "카리스마는 에너지와 관련이 없습니다. '왜'의 명료함에서 나옵니다. CEO의 임무는 '왜'의 전형을 보여주고, 조직에서 '왜'가 줄줄 흘러넘치게 하는 겁니다."
'왜'를 잃어버린 소니
?'왜'를 잃어버린 회사를 꼽는다면요? "소니가 떠오르네요. 소니도 처음엔 '왜'에 집중해서 시작한 기업이었습니다. 창업자 아키오 모리타는 이상주의자였습니다. 그는 베풂, 공헌, 그리고 일본산(産) 물건들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몸집이 커지고 아키오 모리타가 작고하고 나서 소니는 몸집 키우기와 숫자에 집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니는 한때 전 세계 혁신의 선두 주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의 소니는 그저 많은 전자기기 회사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건 삼성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말문을 돌렸다. "우리는 삼성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삼성을 사랑하진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애플 마니아'임을 당당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애플의 로고를 차에 붙이고, '나는 애플을 사용한다'는 것을 과시하려 합니다. 반면 삼성은 그저 또 하나의 회사나 브랜드로 취급합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삼성의 '왜'가 기업 내에서 충분히 소통되지 못하거나, '왜'가 뚜렷하게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많은 직장인이 자신이 선택한 일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기 어려워합니다. "그게 바로 훌륭한 '왜 타입'의 리더가 조직을 운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훌륭한 리더는 조직원들로 하여금 조직이 하는 일의 비전을 제시하고, 조직원들이 거기에 참여함으로써 기쁨과 보람을 갖고 가치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어느 회사도 '나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회사를 세우겠어'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만들어지진 않았습니다. 창업자들이 그리고자 하는 목표와 가치를 바탕으로 창업한 겁니다. 조직원들이 자신의 조직에 속함으로써 보람과 의미, 긍지를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리더십의 요건] ②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의 '공감' '상대방 신발 신어보는' 마음으로 他人과 대화… 사회적 협동성 늘어나
크르즈나릭씨는 이웃에게서 얻었다는 방울 토마토와 직접 끓인 수프를 내왔다. 부엌 식탁에선 유리문을 통해 아담한 정원이 내다보였고, 고양이가 이따금 다가와 재롱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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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철학자 로먼 크르즈나릭
"이제까진 많은 사람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질주했습니다. 소비주의와 물질주의에 기반해서 살아왔지만 이젠 그것이 자신의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우리에게 웰빙을 가져다줄까요? 바로 공감입니다. 물질로 채울 수 없는, 우리에게 결여된 부분을 채워주는 것이 인간관계라는 걸 깨닫게 된 겁니다. 요즘 저는 거의 매일 전 세계에서 강연 요청 메일을 받고 있어요. 왜일까요? 공감은 협동을 가능하게 하고, 팀워크를 원활하게 만들어 조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공감과 연민은 어떻게 다른가요? "공감은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영미권에선 '상대방의 신발을 신어본다'고 표현합니다. 반면 동정은 그저 다른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는 거예요." 노숙자와 대화를 나눠본 적이 있는가?
?공감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나요?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대화입니다. 대화는 편견을 넘어서 타인을 하나의 인간으로서 보게 하는 시발점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일주일에 한 번꼴로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문을 배달하러 오는 사람이나, 당신이 빵을 사는 빵 가게 주인 등과요. 고용주와 고용인이 갈등 관계에 있을 때 그들이 각각 상대방이 한 말을 한 번 더 되풀이해서 따라 하는 것만으로 갈등의 양상이 줄어들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5% 짧아졌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프로젝트인 '옥스퍼드 뮤즈'에선 100여명의 기업인이 100여명의 노숙자와 만나 대화를 나눕니다. 이를테면 '당신이 가장 용감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같은 문제를 놓고 일대일로 이야기해 보는 겁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해 보는 것입니다. 영국에서 2주 전에 대형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그 캠페인에 참가한 수천 명의 사람이 다 함께 닷새 동안 단지 1파운드로 생활을 해 보기로 한 캠페인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이 지구 상엔 10억명이나 됩니다. 셋째는 제가 '팔걸이의자에 앉아서 공감 능력 키우기'라고도 부르는 것인데,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다른 문화권과 다른 환경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을 기르는 거예요. 혹은 다른 세대에 대한 공감도요. 한국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김기덕 감독)이 제가 한국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 중요한 텍스트였던 것처럼 말이죠. " ?학교는 어떻게 공감 능력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까? "저는 공감도 학교에서 하나의 교과목으로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래에 가장 중요한 기술은 공감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감정 지수의 핵심일뿐더러 창의력을 키워주죠.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공감 능력 기르기 교육은 캐나다에서 시작됐습니다. '공감의 뿌리'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그 방법은 아주 훌륭해요. 교실에 아기를 데려오는 거죠. 그럼 5~10세쯤 되는 학생들이 아기 주위에 둘러앉아서, '아기가 왜 울지?' '왜 웃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고 있을까?'라는 이야기를 하게 하는 겁니다. 즉, 아기의 신발을 신어보는 거예요. 이렇게 시작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려 봅니다. '다른 학생을 괴롭히면 그 학생은 어떤 느낌이 들까?' 같은 식으로 말이죠. 효과는 놀라웠어요. 공감 능력과 사회적 협동성은 증가했고, 학교 폭력과 따돌림은 줄어들었어요. 저는 학교에서 이런 교육 방법이 정규 교육 과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감은 감정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을 할 때 감정적이 되면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공감은 단순히 감정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진 않습니다. 공감엔 감정적 공감, 그리고 인지적 공감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감정적 공감은 물론 다른 사람이 느끼는 고통을 보고, 감정 이입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지적 공감은 타인이 느끼고, 요구하는바, 타인의 입장을 정말로 이해하는 속성입니다. 인지적 공감은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지 않습니다. 오히려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올려줍니다." [리더십의 요건] ③ 바버라 켈러먼 교수의 '존중'
존중할 때… 팔로어는 헌신한다
팔로어들 힘 세지고 독립적으로 변해…명령하는 리더는 더이상 설 자리 없어…상호 신뢰 쌓아야 열린 마음으로 협력
2007년 미국 사업가 밥 채프먼씨는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작은 포장용 기계 회사 헤이슨샌디어커를 인수해 사장으로 취임한 뒤 직원들을 면담하고 충격을 받았다. 27년간 공장에서 일한 한 직원에게 "회사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달라"고 하자, 그 직원은 "제가 진실을 말해도 내일 출근할 수 있습니까?"라고 되물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자 직원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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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버라 켈러먼 교수
"사장님, 가끔 출장을 갔다가 공장에 다시 돌아오면 자유가 몽땅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계속 따라다니며 명령을 내리는 것 같아요. 출근하고, 점심을 먹고 돌아오고, 퇴근할 때마다 출퇴근 카드를 찍어야 합니다. 집에 전화할 때도 공중전화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하고, 부품 창고는 자물쇠가 채워진 창고에 보관돼 있어서 사용할 때마다 담당 직원에게 열쇠를 달라고 부탁해야 합니다." 채프먼 사장은 곧바로 인사팀장을 불러 출퇴근 시간기록계를 없애고, 직원들 모두 언제든 회사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했으며, 창고 문을 개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가 마치 한집안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직원들은 (채프먼이 즐겨 쓰는 용어로) '머리와 가슴'을 모두 헌신할 수 있었고, 매출도 오르기 시작했다. 사이먼 사이넥씨의 책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에 나오는 일화다. 사이넥씨는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어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안전하다'는 느낌을 심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전함을 느끼면, 긴장이 이완되고 열린 마음으로 신뢰하고 협력하게 된다. 실적이 나쁘면 언제든지 직원을 해고하는 회사에선 안전감을 확보할 수 없다. 그런 회사에선 협박, 망신, 고립, 바보가 된 기분, 무력감, 배척과 같은 온갖 스트레스를 피하는 게 급선무가 되고, 뭔가 창의적으로 일을 벌이는 것은 뒷전으로 밀린다. 사이넥씨는 "직원들이 조직 '내부의 위험'에 대처하는 데 급급하다면, '외부 위험'에 대한 전체 조직의 대처 역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직원들이 더욱 이기적이게 되고, 서로에 대해, 회사에 대해 무관심해진다는 얘기다. 바버라 켈러먼 〈사진〉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사이넥씨와 다른 근거로 신뢰와 존중의 리더십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과거엔 의사가 환자에게 빨간 약을 처방해 주면 환자는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환자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본 다음 '왜 당신은 나에게 빨간 약을 처방해 준 건가요? 파란 약이 더 효과적이라는데요'라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점점 과거와 같은 통제형, 전제 군주형의 리더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겁니다." 그는 이런 변화에도 기존 리더들의 태도는 바뀌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리더십 산업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지만, 결과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합니다. 미국 의회엔 입법자들이 535명이나 있지만, 의견 일치를 이루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누구나 자신의 주장만 하려 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켈러먼 교수는 리더 못지않게 팔로어들의 역할도 강조했다. "왜 많은 사람이 리더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걸까요? 리더는 팔로어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말입니다. 제가 어릴 때 미국에선 시민 윤리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어떻게 하면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는지 가르치는 과목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리더가 되는 방법만 배우려고 하고, 아무도 팔로어십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리더십 시스템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①리더 ②팔로어와 다른 플레이어(시민단체, 언론 등) ③문화적, 역사적 배경이 그것이다. 켈러먼 교수는 "리더십을 논할 때는 이 세 가지를 함께 이야기해야 한다"면서 "리더 한 사람에게만 초점을 맞춰서 리더십을 논할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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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통치자는 백성을 믿고 말을 아껴야… 스스로 이루도록 이끌어라
정리=이위재 기자
[지상 강의] 老子에게 배운다… 최진석 교수의 삼성 사장단 회의 강연 (下)
자신의 잣대로 판단 말라 리더가 조짐을 읽는 능력이 있으면 정해진 것을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 이끌어 낼 수 있어
잔소리를 줄여야 성취와 功은 백성들에게 돌려야 功을 이루게 이끌어 줬으면 리더의 역할은 그것으로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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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BS 제공
최진석(55· 사진) 서강대 철학과 교수가 삼성 사장단 회의에서 강의한 '노자에게서 배우는 경영의 지혜' 내용을 지난주에 이어 소개한다. 최진석 교수는 베이징대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저서로 '노자의 목소리로 듣는 도덕경'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등이 있다. 길거리에 귀걸이를 하고 옅은 화장까지 한 채 마치 여자처럼 꾸미고 지나가는 젊은 남자를 봤다고 하자. 매우 낯선 풍경이다. 여기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대개는 '좋다' 아니면 '나쁘다'고 판단할 것이다. 만약 이 정도에 그쳤다면, 미안하지만 리더의 자격을 아직 갖추지 못한 사람이다. 리더는 '조짐'을 읽는 사람
리더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에 대해 가치관이나 신념, 자기 취향에 따라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 현상이 반영하는 맥락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 생경하게 다가오는 새로운 풍경을 '조짐' 혹은 '신호'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좋다' '나쁘다'는 자신에게 이미 있는 이념이나 신념을 근거로 할 뿐이다. 신념에 맞으면 '좋다' 하고, 맞지 않으면 '나쁘다' 한다. 정치적 판단의 전형이다. 이런 판단이 많으면 이념과 신념들 사이 충돌만 있지 화해는 없다. 제3의 창조는 불가능하다. 조짐을 읽으려면 질문해야 한다. 전에는 없던 일이 지금 일어났다면 도대체 무슨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해야 한다. 이 궁금증이 질문을 하게 하는 것이다. 조짐을 읽는 더듬이는 '질문'
리더는 질문이라는 덕목에 유념해야 한다. 대답이라는 건 이미 있는 지식이나 이론을 흡수한 다음,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다시 뱉어내는 일이다. 이때는 누가 많이 혹은 원형 그대로 뱉어낼 수 있는가가 승부를 가른다. 대답을 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지 못한다. 오직 지식이나 이론이 지나다니는 통로나 중간역일 뿐이다. 반면 질문은 궁금증이나 호기심 즉 자신의 욕망이 튀어나오는 행위다. 질문할 때 인간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한다. 신념이나 이념의 맹목적인 지배를 받거나 지식이나 이론의 전달자 혹은 수용자로 남지 않는다. 대신 질문을 하는 궁금증의 주인, 욕망의 주체로 등장한다. 여기서 인문적 통찰이 시작되는 것이다. 기업가는 경계에서 결단하는 존재
기업가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있다. 자신의 의사 결정이 승패를 바로 결정하기 때문이다. 아니 생사를 결정하기도 한다. 생사의 경계에 있는 유일한 직종이다. 공직자, 정치인, 교수에겐 이 정도 긴장감은 없다. 경계에 서 있다는 건 어느 한 편에도 의존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모든 이념과 신념은 모두 한 편에 서는 것들이다. 기업가가 경계에 있다는 말은 바로 어느 한 편에도 서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념이나 신념으로부터 자유롭다는 것이다. 특정한 기준이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사람은 경계에 서서 고도의 불안을 감당하는데, 이 불안이 그 사람을 예민하게 유지해 준다. 이 예민함이 바로 통찰을 가능하게 하는 '더듬이'가 된다. 지식, 감각, 경험, 욕망, 기억이 한 덩어리로 폭발해 나오는 통찰을 가능하게 해주는 힘이다. 이 더듬이는 매우 성숙한 상태의 자유이자 자발성이다. 우리가 차근차근 축적하는 모든 지적 작업은 바로 이 더듬이가 순간적으로 폭발시키는 정확성을 기대하는 것 이상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말하는 더듬이는 이미 정해진 것들로부터 제한을 받거나 지배를 받는 순간 사라져 버린다. 내가 나 자신으로 존재할 때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리더는 기존의 지식이나 이론의 수행자가 아니라, 욕망의 자발적 발휘자로 등장한다. 바로 대답이 아니라 질문하게 되면서 조짐을 읽게 되는 것이다. 노자 리더십의 핵심은 결국 조짐을 읽는 능력이다. 이 능력이 있다면 정해진 것을 강요하지 않고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유위(有爲)가 아니라 무위(無爲)로서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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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취안저우(泉州) 칭위안산(淸源山)에 있는 노자(老子) 석상(石像). / 중국도교협회 제공
최고의 정치 리더십은 무위
무위는 정치 리더십에도 적용된다. 노자는 "가장 훌륭한 통치는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안다. 그다음 단계는 통치자를 친밀하게 느끼며 찬미한다. 더 낮은 단계에서는 통치자를 두려워한다. 가장 낮은 단계는 백성들이 통치자를 비웃는 상황이다(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라고 말했다. 이상적인 체제에서 백성이 통치자가 있다는 사실만 겨우 아는 건 그가 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팔짱 끼고 가만히 있다는 게 아니라, 백성이 과중하게 느낄 통치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통치자가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으로 무장해 이를 강요하는 게 아니라 "무엇을 하되 반드시 자기 뜻대로 하려 하지 않는다(爲而弗志)"는 것이다. 통치의 주도권이 통치자가 아니라 백성에게 있을 때 가능한 풍경이고, 이 풍경은 통치자가 백성들을 믿을 때라야 비로소 그려질 수 있다. 구성원들이 지배 권력을 두려워하고 비웃는다는 말은 구성원 자신과 지배 권력 사이가 분리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그 구성원들은 조직의 참여자가 아니라 비평가로 남게 되면서 조직은 자체 붕괴를 시작한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어떤 개인, 조직, 사회, 국가도 외부의 것들이 무너뜨릴 수는 없다. 항상 자체 붕괴가 먼저 시작되면서 외부의 침략자들을 초청하게 되는데, 자체 붕괴의 신호탄은 구성원들이 비평가 행세를 하게 될 때다. 영화가 재미있고 없고를 좌우하는 데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주목할 대목은 감독이 관객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핵심이란 점이다. 감독이 영화를 만들면서 관객의 수준을 믿지 않으면 의도대로 영화가 읽히지 못할 걸 걱정하게 되고, 그러면 불안한 마음에 관객이 읽어야 할 내용까지 모두 영화에 담게 된다. 이때 관객이 그 영화 속으로 들어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이 사라진다. 이 여백에서 감독과 관객은 충돌하고, 그 충돌이 감동을 산출하게 되는데, 여백이 사라졌다면 감동의 가능성은 당연히 말살된다. 강한 이념과 기준이 불신의 씨앗
통치자가 백성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그건 통치자가 강한 이념이나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기준에 맞출 수 있는 백성은 매우 적다. 기준은 말뚝처럼 박혀 있고, 세계는 움직인다. 백성은 움직이는 세계의 표상이다. 고정된 상태에서 움직이는 표적을 보면서, 표적이 움직인다고 불평하는 바보로 전락하는 일은 순식간이다. 가정에서 부모·자식 간 갈등도 대개 부모의 선의(善意)에서 비롯된다. 자식을 잘되게 하기 위해 부모가 가진 선의가 기준이 되는 순간, 부모는 자식이 그 기준에 부합하면 예뻐하고 그렇지 못하면 미워하게 된다. 선의로 가지는 기대와 희망이 비록 아름다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기준으로 확립되는 순간 자식에게는 폭력이 될 수밖에 없다. 말을 아끼라
그래서 노자는 "말을 아끼라(悠兮, 其貴言)"고 한다. 바로 '잔소리'를 줄이는 것이다. 잔소리는 통치자가 백성에게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이념이나 기준이다. 이것을 줄이는 일은 백성의 자발성이 발휘돼서 이루는 자율적 성취가 바로 세계 변화를 정상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가능해지는 일이다. 자식이 출세하고 부모에게 공을 돌리는 일은 아름답다. 하지만 거기에 자식 스스로 느끼는 자부심은 자리하기 어렵다. 백성이 공을 이루고 그것을 통치자에게 돌리는 일이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런 구조 속에서는 백성 스스로 자발성과 자율성에 대한 동기가 자라나지 못한다. 성취와 공을 자식과 백성에게 돌려줘라. 리더는 공을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다. 공이 이뤄지도록 이끌어주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이 바로 무위(無爲)의 리더십이다. 위클리비즈와 조선비즈 북클럽이 함께하는 지식 콘서트가 오는 27일 저녁 7시 광화문 조선비즈 연결지성센터에서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오해와 진실’(노승석 순천향대 교수·난중일기 완역자)이란 제목으로 열린다. (02)2038-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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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엄 먹거리 찾는 소비자 늘어..
구찌, 루이비통 등 고가의 명품만을 찾는 사람들을 소위 명품 족이라 칭한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패션업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용어는 아니다. 최근에는 식품업계에서도 프리미엄 제품만을 찾는 명품 족이 새로운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다.
식·음료업계 명품족은 지속적인 경제 불황과 함께 세월호 참사 이후 소비 심리가 위축됨에도 불구하고 자신 또는 가족들이 먹는 것에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에 발맞춰 식. 음료 업계에서도 고급 성분만을 사용하거나 인공 첨가물을 뺀 제품, 또는 해외에서나 맛볼 수 있던 디저트 등의 프리미엄 제품들을 대거 선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6월 롯데마트 자료에 따르면 올 1~3월 착즙 주스와 농축환원주스 등을 비롯한 프리미엄 냉장 주스군의 매출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8.6%나 증가했다.
또한, 2008년 400억원 수준이었던 신세계 백화점 내 고급 디저트 매출은 지난 해 기준 900억원으로 2배 가량 늘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비록 소비 시장이 침체기지만 소비자들의 건강에 대한 지속적 관심과 웰빙 트렌드, 식품 안전에 대한 사고들이 맞물려 프리미엄 식품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라며, “이에 식. 음료 업계에서는 가격대가 조금 있더라도 프리미엄 제품들로 소비자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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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즙 주스 & 영양 데일리 넛 등 건강 챙기는 프리미엄 간식 인기 건강한 삶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건강을 위해 식품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소비자들이 증가하고 있다. 고급 재료들만을 사용하거나, 인공 첨가물을 뺀 제품, 과일 그대로를 착즙한 주스까지 식. 음료 업계의 프리미엄 바람이 거세다. 돌(Dole)코리아 ‘블루베리·아로니아 1L 주스’는 프리미엄 과일인 블루베리와 차세대 슈퍼푸드로 불리는 아로니아 100% 과즙을 1L 용량에 담아냈다.
‘블루베리 1L주스’는 고산지대라는 지리적 특성과 고온 건조한 기후로 당도가 높고 품질이 우수한 칠레산 블루베리를 사용했으며, 세계 최대 아로니아 생산지인 폴란드산 아로니아를 사용한 ‘아로니아 1L주스’는 체내 활성화 산소를 제거하는 폴리페놀이 포도의 약 80배로 다른 과일에 비해 월등히 높아 항암효과와 콜레스테롤 제거, 비만예방 등에 좋은 제품이다.
특히 두 제품 모두 항산화 작용을 하는 안토시아닌이 함유돼 눈 건강과 노화방지에 효과적이다.
매일유업 ‘플로리다 내추럴 프리미엄 착즙 주스’는 향료나 색소 등의 인공 첨가물은 물론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생 오렌지, 생 자몽을 그날 바로 짠 100% 프리미엄 주스다. 대부분의 일반 과일 주스가 보통 3~4배 농축액을 물에 희석시켜 당도를 맞추는 데 반해, ‘플로리다 내추럴 프리미엄 착즙 주스’는 전 세계 60개국에서 맛과 품질을 인정 받은 제품이다.
스타벅스 코리아 ‘천연 프리미엄 요거트’는 경기 이천시 와우 목장의 1A등급 원유를 사용해 만든 무안정제, 무방부제, 무색소 제품으로 인공적인 식품첨가물을 넣지 않고 유리병에 개별 발효해 신선함을 살렸다. 담백한 맛의 ‘스타벅스 그릭 요거트’와 달콤한 맛의 ‘스타벅스 요거트’ 2종으로 구성됐으며, 그리스 전통 발효유와 같이 진하고 맛과 영양이 풍부해 웰빙 음식을 찾는 소비자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돌(Dole)코리아 '후룻&넛츠 골드라벨'은 수입한 지 180일 미만의 고급 품종과 높은 등급의 신선한 견과류와 건과일만을 사용한 데일리넛 상품으로 건강하고 믿을 수 있는 먹거리를 찾는 소비자들에게 제격이다.
노화방지와 성인병 예방에 좋은 호두, 아몬드, 캐슈넛 외에 헤즐넛을 사용해 포만감을 높여 비만 예방에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데일리넛 상품 최초로 함유된 푸룬(말린자두)은 식이섬유가 사과의 12배, 비타민A가 사과의 24배 가량 들어 있어 변비 예방 등 여성 건강에도 효과적이다.
◇ 작은 사치로 얻는 즐거움, 다양한 입맛 공략하는.. 백화점 업계는 최근 고급 식품 브랜드 입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 지난 해 9월 롯데 백화점에 문을 연 한 프리미엄 아이스크림 디저트 브랜드 매출은 월 평균 1억원을 웃돌고 있다.
고급 명품 대신 눈에 띄지 않고 최고급으로 즐길 수 있는 디저트들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제과 디저트 브랜드 '몽슈슈'는 출시된 지 1년이 지난 지금도 줄을 서서 사먹을 정도로 인기가 있다. 대표 제품인 '도지마롤'은 빵에 생크림을 곁들여 먹는 것이 아닌 생크림을 메인으로 가득 넣은 제품으로, 고급스러우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훗카이도산 우유만을 사용해 고소하고 부드러운 우유의 맛이 산뜻하게 느껴져 젊은 2~30대는 물론이고 노인들에게까지 인기를 끌고 있다.
‘브릭팝’ 은 과일을 아이스크림에 담은 생과일 아이스바로 지난 해 2월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에 처음 문을 열고, 현재 15개 가량의 매장을 가지고 있다. 포도, 복숭아, 자두, 수박 등 과일 즙에 유기농 시럽을 더하거나 생과일 그대로를 썰어 모양을 냈다.
또한, 인공 감미료와 합성 첨가물을 넣지 않았으며 과일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본연 그대로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디저트 브랜드 ‘치즈 케이크 팩토리’는 41년 전통의 치즈케이크 전문점 베이커리로 미국 최고의 치즈케이크 브랜드로 손 꼽힌다. 일반 케이크보다 40% 가량 비싼 가격대이지만, 이국적인 맛과 이미지로 젊은 층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또한, 편의점 PB 브랜드 디저트들도 브랜드만의 독특한 개성과 차별화로 프리미엄 디저트 시장에서의 존재감을 높이고 있다.
편의점 CU는 프리미엄 냉장 PB주스인 ‘CU플로리다 주스 오렌지 자몽’을 판매하고 있다. 현지 직수입을 통한 100% 플로리다산 과즙을 사용하며 높은 품질과 합리적 가격으로 소비자들의 인기를 얻고 있다.
GS25 자체 브랜드 상품인 ‘라벨리 딸기빙수’는 부드러운 식감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기존에 출시돼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라벨리 팥빙수’의 후속작으로 딱딱한 얼음 형태가 아닌 얼음을 이중으로 분쇄하는 방식과 우유나 연유 등을 사용하여 부드러운 프리미엄 빙수를 저렴하게 즐길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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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인터넷 광고사업 준비…구글 정조준"< WSJ>
(샌프란시스코=연합뉴스) 임화섭 특파원 = 세계 최대 온라인 소매업체 아마존이 인터넷 광고사업에 진출해 최대 인터넷 서비스 기업인 구글과 맞대결을 준비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3일(현지시간) 아마존이 올해 안에 '아마존 스폰서드 링크스'라는 새 광고 플랫폼의 시범서비스 계획을 광고업계 관계자들에게 알렸다고 보도했다. 이 플랫폼은 마케팅 담당자들이 아마존 사용자 2억5천만명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것이라고 이 관계자들은 전했다. 아마존은 자체 페이지나 다른 사이트에 광고를 실어 주는 사업을 하고 있으나 규모가 크지 않으며, 올해 광고 매출은 10억 달러(1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아마존의 광고 플랫폼 사업이 성장한다면 이 분야에서 확고한 제1위 업체인 구글에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WSJ는 평가했다.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에 따르면 구글은 전세계 온라인 광고 시장의 31.45%를 점유하고 있으며 연매출은 500억 달러(50조원)다. solat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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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전략 트렌드] 고객 짜증 확 줄이는 ‘대기시간의 법칙’
요즘처럼 체감 경기가 좋지 않을 때 자사 상품을 기다리는 대기 고객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하지만 대기하는 고객으로선 여전히 짜증 나는 얘기다. 물론 고객의 대기시간을 줄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대기 과정이 불가피하다면 고객의 기분을 달래 체감 대기시간을 줄이고 대기 과정이 공정하다는 이미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 이 대기 과정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고객은 대기를 당장 포기하고 매장에 다시 나타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어떤 상품을 사거나 어떤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마트에서 결제하기 위해 계산대 앞에 줄을 서기, 버스 정류장에서 도대체 오지 않는 버스 기다리기, 아침 출근 시간에 엘리베이터가 한 대밖에 없는 회사 건물 1층에서 엘리베이터 기다리기, 명절 때 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자동차를 타고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을 생각하면 잘 알 수 있다. 주문 미리 받고 소일거리를 줘라 필자가 살고 있는 집 부근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줄을 서 대기할 때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다. 우선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데 자신이 어떤 줄에 서야 하는지 모른다. 왜냐하면 주문하기 위한 줄과 음식을 받기 위해 서 있는 줄이 엉켜 있기 때문이다. 둘째, 줄이 길면 계산 창구가 갑자기 하나 더 열릴 때가 있는데 그러면 내 줄 뒤에 있던 사람이 새로 개설된 계산 창구로 가 먼저 서비스를 받는다. ‘먼저 오면 먼저 서비스를 받는다(first come, first served)’는 상식적인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셋째, 운이 나쁘게도 자기 앞의 사람이 매우 많이 주문하는 바람에 대기시간이 더 길어져 더욱 짜증이 난다. 이 매장은 이런 혼잡한 상황을 의식했는지 이제야 매장의 카운터 앞에 음식을 주문하고 대기하는 방법에 대해 화살표로 안내하고 있다. 진작 했었어야 했다. 반면 서울 광화문의 파스타 레스토랑인 뽐모도로에서는 점심시간에 줄을 길게 서야 하지만 대기시간이 그리 지겹지 않게 느껴진다. 점심시간에는 당연히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겨울처럼 추울 때에는 3대의 전기난로가 움직이면서 대기 고객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대기 중에 직원이 수시로 나와 주문할 메뉴를 받아 가기 때문에 프로세스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고객이 느끼므로 일단 안심이 된다. 이미 주문했기 때문에 줄 서는 것을 포기하고 다른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도 없다. 또 무엇보다 음식이 맛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기다릴 가치가 있다. 서비스 마케팅 이론을 보면 7P 마케팅 믹스 전술이 나온다. 유형 제품을 대상으로 하는 상품(Product)·가격(Price)·유통(Place)·촉진(Promotion)·사람(People)·물리적 증거(Physical Evidence)·프로세스(Process)를 추가한 것이다. 이 중 프로세스 관리는 구매 전, 구매 중, 구매 후로 나뉘는데 대기 관리는 구매 전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줄을 어떻게 서게 하는 것이 효과적일지 고민하는 큐잉 이론(Queueing Theory)이 발달했다. 고객의 기다림을 관리하기 위해 대기자 수와 대기시간의 관계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이론이다. 대기자의 수와 시간 등을 분석해 기계를 몇 대 도입할 것인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몇 개 설치할 것인지, 매장의 직원을 몇 명 고용할 것인지, 줄을 어떤 형태로 만들 것인지에 대해 최적의 의사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어떤 마트 매장에서는 CCTV를 통해 계산대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니터하고 계산대에 한 줄에 다섯 명 이상 서 있으면 새로운 계산대를 열어 직원이 손님을 받는다. 가동하는 계산대의 수를 신축적으로 조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 줄로 설 수 있는 공간이 되기만 하면 한 줄로 서도록 하는 것이 공평하다. 왜냐하면 먼저 온 순서대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줄이 너무 길면 소비자들이 놀라 아예 줄 서는 것을 포기할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줄 서는 것이 일상화돼 있는 테마파크나 대규모 공연장 같은 곳에서는 줄을 오밀조밀하게 미로형으로 만들어 줄이 길어 보이지 않게 하고 발을 자주 옮겨 앞으로 전진하는 느낌이 들도록 한다. 실제 대기시간은 똑같지만 심리적 대기시간을 줄여주는 데 효과적이다. 소파처럼 편하게 쉴 수 있는 대기 공간이 있다면 사람들이 서서 기다리게 하지 않고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나눠 줘 대기 중 행동반경을 넓혀 주면 좋다. 물론 상품이 나오면 전광판에 해당 번호표 번호가 뜨는데 이것만 확인하면 된다. 최근 커피숍에서는 주문하면 진동 장치를 받는데 원하는 커피가 나오면 불빛을 내며 진동한다. 어떤 커피숍에서는 이런 장치를 멀티미디어 기계로 만들어 흥미로운 콘텐츠가 나와 지루함을 달래준다. 하지만 스타벅스 같은 곳은 번호표를 주지 않고 그냥 기다리게 하는데 이는 직원과 고객 간의 밀착감을 중시하는 또 다른 정책 때문이다. 심리적 대기시간 줄이는 8가지 원칙 대기 관리에서는 대기 고객이 똑같은 시간을 기다려도 심리적으로 느끼는 대기시간을 줄여 주는 게 매우 중요하다. 데이비드 마이스터(David Maister)는 8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대기 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대기시간이 더 길게 느껴진다. 둘째, 주문하지 않고 대기하면 더 길게 느껴진다. 셋째, 근심에 휩싸이면 더 길게 느껴진다.
넷째, 언제 서비스를 받을지 모른 채 기다리면 더 길게 느껴진다. 다섯째, 서비스가 지체되는 원인을 모르면 더 길게 느껴진다. 여섯째, 불공정하면 더 길게 느껴진다. 일곱째, 자신이 받을 서비스의 가치가 적으면 더 길게 느껴진다. 여덟째, 혼자 기다리면 더 길게 느껴진다. 이 여덟 가지 원칙은 그리 어렵지 않다. 매우 상식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원칙에 입각해 반대로 조치를 취하면 심리적 대기 간을 줄일 수 있다. 첫째 경우에는 대기 중 무언가 할 수 있도록 소일거리를 제공하면 된다. 시드니에 있는 이케아 매장은 할 수 없이 부인과 함께 매장에 온 남편들을 위해 매장 입구 쪽에 맨랜드 공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인기가 좋다. 이 대기 공간에는 잡지·TV·인터넷·실내축구 시설도 있고 정기적으로 간식도 제공해 주고 있다. 한국에 오픈할 이케아 매장에도 이런 남성 공간이 생길지 궁금하다. 둘째 경우에는 앞서 뽀모도로 레스토랑처럼 줄 서 있을 때 직원이 나와 미리 주문을 받으면 된다. 셋째 경우에는 너무나 당연하다. 넷째 경우에는 자신이 타려고 하는 버스가 몇 분 후에 오는지 보여주는 버스 정류장 전광판을 설치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었을 때 얼마나 기다리면 되는지 대충 예상 대기시간을 알려주면 고객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게 된다. 고객에서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은 채 무작정 기다리게 하는 상황을 초인종 효과라고 하는데 이런 조치를 하면 별 불만이 생기지 않는다. 다섯째 경우에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릴 때 기후변동이나 비행기 고장으로 비행기가 도착하지 않기도 하는데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적절한 이유를 대기 고객에게 전달해 줘야 고객 불평이 줄어든다. 여섯째 경우에는 매우 중요한 공정성 문제다. 오는 순서대로 번호표를 주면 문제가 많이 해결되는데 이때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필자가 예전에 어떤 보험회사 매장에 가서 번호표를 뽑았는데 내 앞에 이미 10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때때로 번호표를 뽑고 나서 서비스를 받지 않은 채 매장을 떠나는 고객이 있다. 그럴 때 매장 서비스 매니저가 그 사실을 알고 내게 그 번호표를 주면서 먼저 서비스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배려는 필자에게는 매우 좋지만 매장 내 다른 대기 고객에게는 매우 부당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매장 서비스 매니저의 지나친 서비스가 공정성을 해쳐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테마파크 줄 서면 캐릭터가 와서 말 거는 이유 일곱째 경우는 인내심 문제다. 특히 회사가 인기 있는 신제품 모델을 첫 출시할 때 열광 고객들은 매장 앞에 텐트를 치고 며칠 대기할 때도 있다. 기업은 이런 상황을 홍보에 종종 사용하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잡기도 하고 매체에 많이 소개되기 때문이다. 여덟째 경우에는 말동무를 만들어 주면 된다. 우리가 테마파크에서 긴 줄을 서 있을 때 우리에게 친숙한 캐릭터들이 와서 말을 건네기도 하는데 바로 이런 때다. 이 밖에 아주 짧은 시간에 간단히 일을 처리할 수 있을 때에는 그런 사람들만을 위해 급행 줄을 별도로 만드는 것도 좋다. 외국 마트에서는 그런 급행 줄이 자주 눈에 띄는데 한국에는 공정성 우려 때문인지 별로 보이지 않는다. 또한 매장에서 바삐 일하지 않는 사람은 고객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는 게 좋다. 칸막이라도 해서 시야를 가려야 한다. 고객이 힘들게 서서 기다리는데 느긋한 직원을 보면 화가 치밀어 오르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기업들은 시각·후각·미각·청각·촉각 같은 오감을 최대한 활용해 대기 고객을 관리하기도 한다. 우선 시각적 측면을 보면, 자신의 주위 공간 인테리어가 파랑 계통의 차가운 색이면 따뜻한 색에 비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따라서 대기실의 인테리어를 차가운 색으로 해 고객의 체감 시간을 줄일 수 있다. 후각적 측면을 보면, 대기 고객을 편안하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병원에 가면 소독약 냄새가 나서 괜히 불안감이 증폭되는데 어떤 병원들은 라벤더·레몬·허브·커피 같은 향기를 분사해 병원의 고유 냄새를 제거, 환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 미각적 측면을 보면, 어떤 레스토랑은 웨이팅 푸드(waiting food) 전략을 쓰기도 한다. 음료·쿠키·애피타이저 같은 약간의 요깃거리를 대기 고객에게 서빙해 심리적 대기시간을 줄이는 것이다. 하지만 웨이팅 푸드를 너무 많이 제공하면 메인 식사의 만족도를 줄일 수 있으니 음식의 양과 질을 조심히 조절해야 한다. 대기 고객 관리에서 심리적 대기시간을 줄이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질적으로 대기시간을 줄여 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버스 정류장의 전광판은 위성항법장치(GPS) 정보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지 알려 줘 심리적 대기시간을 줄여 준다. 하지만 요즘에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특정 노선버스가 몇 시 몇 분에 오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집에서 미리 계획을 세워 느긋하게 나올 수 있다. 그 시간만큼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갈수록 모든 사업은 서비스화되고 있는 만큼 고객의 대기시간을 진정으로 줄이려는 노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물론 대기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때로는 일부러 줄을 서게 만들어 지나가는 행인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매우 중요할 때가 있다. 효과적인 대기 줄을 만드는 방법에는 또 다른 창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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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활용, 소상공인 자립 지원 … 카드사는 변신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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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카드는 고객 기부금을 모아 소외지역에 도서관 짓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 6월 서울 서교동 행복무지개지역아동센터에 열린 아름인도서관 개관식. 왼쪽부터 아이들과 미래 박두준 상임이사, 기부고객 대표 홍호선씨, 신한카드 조성하 부사장, 강창구 센터장. [사진 신한은행] | 슈퍼마켓부터 택시·목욕탕·영화관 결제까지. 신용카드는 현대인의 생활 깊숙이 침투했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경제활동인구의 1인당 보유 카드 수는 3.94장. 신용카드의 본고장인 미국(3.5장)보다 많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신용카드 사용액 비중(2012년 말 기준)도 한국이 38.2%로 캐나다(19.4%)·호주(16.7%)·미국(15.0%)·영국(7.6%)보다 훨씬 높다. ‘카드의 생활화’ 이면에는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영업이 있었다. 카드사들은 2003년 ‘카드 대란’으로 불렸던 유동성 위기를 넘긴 뒤 다시 경쟁을 시작했다. 신용카드 발급 수도 2006년 9000만 장으로 다소 줄어드는 듯하다 2011년 다시 1억2000만 장을 돌파했다.
이처럼 몸집 불리기에 열중하던 카드업계는 올 들어 위기를 맞았다. 고객 정보 유출 사건이 터지면서 신용카드사에 대한 불만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탐욕의 영업’이라는 비판은 카드사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카드업계는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회사별로 구체적 대책은 다르지만 크게 보면 과거의 ‘양적 확대’에서 고객에게 다가가는 ‘질적 확대’로 변신하고 있다.
신한카드는 빅데이터를 상품 혁신에 활용하고 있다. 신한카드 측은 ‘빅데이터 경영’의 본질을 “고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경영”이라고 설명한다. 기존의 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고객관계관리)이 고객의 과거 이력 분석에 국한됐다면 ‘빅데이터 경영’은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미리 제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위성호 사장은 지난 5월 빅데이터 경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지금까지는 고객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보다 각자 편의에 따라 고객을 분류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빅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한 분 한 분께 맞춤 솔루션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한카드는 지난해 말 업계 최초로 ‘빅데이터 센터’를 열고 공익성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첫 번째 성과는 지난 2월 나왔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정보센터와 제휴를 맺고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이용행태를 분석해냈다. 이 분석은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을 만드는 데 활용되고 있다. 4월부터는 킨텍스(KINTEX)와 협력해 지역상권 활성화를 목적으로 방문객들의 소비패턴을 분석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신용을 잃은 사람들과 금융 소외 계층의 자립을 돕고 있다. 소상공인을 위해서는 현대차미소금융재단에서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를 상대로 사업 컨설팅, 경영개선 교육, 인테리어 디자인, 마케팅까지 해법을 제공한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CSR, 디자인, 고객서비스 담당직원들과 업종 전문가들이 단계별로 함께 한다. 정규 교육을 이수할 기회를 놓쳐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외계층을 대상으로는 ‘드림 교육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 올해 6기 과정은 30세 이상~50세 이하의 구직 희망자 21명을 선발해 12개 자격증 취득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금융 기업이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사회공헌을 고민하다 고기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낚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을 계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IBK기업은행은 캐시백을 대폭 확대한 신상품 ‘IBK약속카드’를 내놨다. 복잡한 제휴할인을 없애는 대신 사용 금액에 따라 돌려주는 돈의 액수를 늘렸다. 할인이나 포인트 적립을 위한 까다로운 조건 없이 서비스를 단순화했다. 본인과 가족카드 연간 이용금액을 합산해 3000만원 이상시 50만원, 2000만원 이상시 30만원, 1500만원 이상시 15만원, 1000만원 이상시 10만원, 600만원 이상시 5만원, 300만원 이상시 3만원을 매년 한 번에 제공한다. 연간 이용액이 300만원 미만이거나 중도에 해지할 경우 연간 이용금액의 0.3%를 캐시백 해 준다. 카드 결제계좌를 기업은행으로 지정하고 30만원 이상 이용하면 전자금융 이체수수료와 타행 자동화기기 출금수수료(월 10회), 기업은행 자동화기기 타행 이체수수료 등 각종 금융수수료가 면제된다. IBK기업은행 관계자는 “제휴처 할인 서비스를 없애면서 고객들은 자신의 정보가 마케팅을 목적으로 다른 곳에 제공될 걱정을 안 해도 되게 됐다”며 “복잡한 할인 혜택을 꼼꼼히 따지지 않으면서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중장년층 고객의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KB국민카드는 순우리말 상품을 잇따라 출시하며 한글사랑 의식 고취에 나서고 있다. ‘누리카드’는 한 장의 카드로 국내외 모든 가맹점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훈·민·정·음은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 학원비 할인 혜택을 받으려면 ‘훈카드’, 이동통신요금 할인을 많이 받으려면 ‘민카드’ 등을 취사 선택할 수 있다. ‘가온카드’는 전월 실적 조건, 적립 한도 제한 없이 모든 가맹점에서 일시불 및 할부 이용 금액의 0.5%가 포인트로 기본 적립된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
공포감 키우는 금연 캠페인 … 해법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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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미국 연방 항소법원은 FDA의 담뱃갑 경고그림 인쇄 의무화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결했다. | 담뱃갑에 흡연 경고 그림을 삽입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이 이번에는 법제화될 수 있을까. 두 달 전 보건복지부는 이 개정안을 7월에는 입법예고하고 하반기에는 법제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입법예고도 이뤄지지 않았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그 이후부턴 쪼그라든 허파와 검게 그을린 치아, 타 들어가는 뇌 사진 등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그림이 포장지에 박힌다. 앞·뒤·옆면 모두 50% 이상 면적을 차지한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다.
담뱃갑 경고 그림은 대표적인 비(非)가격정책으로 현재 55개 나라에서 도입하고 있다. 담뱃세를 올리는 것 다음으로 효과가 좋다는 말도 있다. 2002년에 경고 그림을 도입한 브라질에서는 성인의 67%가 “금연 동기가 강화됐다”고 답한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금연 상담 문의도 4배 가까이 올랐다고 했다. 이경은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장은 “우리나라는 2005년 이미 담배규제기본협약(FTCT)을 비준한 나라다. 당연히 빠르게 시행해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부가 산업만 발전할 거라는 주장이다. 대표적으로 스마트폰 케이스와 같은 ‘담뱃갑 케이스’가 불티나게 팔릴거라고들 한다. 애연가 커뮤니티인 ‘아이러브 스모킹’ 운영자 이연익씨는 “대부분의 흡연자들은 잠자는 시간 빼곤 하루 종일 담배를 가지고 다니는데 경고 그림 보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사진을 끼우거나 케이스를 씌워 경고 그림을 사실상 소용없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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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갑 경고그림 때문에 담배케이스 산업이 커질 거라는 주장이 나온다. | 흡연자에게 수치심을 준다는 주장도 있다. 인권의 문제라는 것이다. 한국담배소비자협회 최비오 부장은 “담뱃갑 그림을 본 비흡연자들은 ‘담배도 끊을 줄 모르는 의지 약한 사람’으로 흡연자들을 인식할 것”이라며 “담배가 몸에 좋지 않은 건 인정하지만, 담배 소비자들을 억지로 불편하게 해가며 흡연율을 떨어뜨리려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악마의 인쇄’라고도 불리는 담뱃갑 그림이 비흡연자에게까지 시각적 폭력을 줄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충격을 주거나 가격을 올리거나 무조건 못 피우게 하는 방식으로 금연시키기 보다는, 팔꿈치로 슬쩍 찔러 금연을 하게끔 하는 ‘넛지 전략(Nudge·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원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담뱃세 인상은 세수확보를 위한 꼼수로 언급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금연구역 확대가 통행구역 흡연으로 이어졌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실제 전자담배 판매율이 상승세를 타는 등 담배 대체재를 찾는 움직임도 늘고 있지만, 현재 마련된 금연 시스템은 이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연익씨는 “정부는 흡연자를 죄인 취급하고 사회적 경멸 대상으로 만들 게 아니라, 담뱃값에서 걷은 세금을 흡연자 건강검진 지원에 써서 스스로 몸 상태를 자각하게 하는 등 궁극적으로 흡연율을 줄여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했다. 담배에 직접 메스를 대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금연을 독려할 수 있는 영리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
[역사를 바꾼 자동차 M&A 명장면] ‘1달러 매물’ 크라이슬러, FCA로 새 날개
‘세계 3위 자동차 제조사 탄생.’ 1998년 5월,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 충격을 안긴 사건이 일어났다.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인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와 합병을 선언한 것이다. 360억 달러 규모의 인수를 주도한 위르겐 슈렘프 회장은 다임러그룹 회장에서 다임러크라이슬러 회장으로 직함을 바꿔 달았다. 다임러크라이슬러는 닷지와 지프부터 메르세데스-벤츠까지 모든 차종을 아우르는 글로벌 자동차 제국의 완성판을 이룬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이 합병을 가리켜 주저 없이 ‘세기의 결혼’, ‘천상의 합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합병 발표로부터 10년을 채우지 못한 채 ‘세기의 결혼’은 ‘최악의 선택’으로 바뀌었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는 끝내 융화되지 못했고 화학반응을 일으키지 못한 합병은 서로의 자본을 갉아먹었다. 두 회사가 함께할 방법은 더 이상 없었다. 다임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크라이슬러는 다른 유럽 자동차 회사인 피아트와 한 가족이 됐다. 크라이슬러는 유럽과 미국을 수시로 오간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회장의 쉴 틈 없는 현장 지휘에 힘입어 단기간에 경영이 정상화됐다. 마침내 새로운 가족이 탄생했다. ‘피아트 크라이슬러 오토모빌스(FCA)’가 그 주인공이다. 기업 사냥꾼의 먹잇감으로 전락 1978년 포드에서 크라이슬러로 자리를 옮긴 리 아이아코카는 조직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1980년대 전성기에 이어 크라이슬러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여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1990년대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생산능력은 수요를 초과했다. 여기에 도요타·혼다 등 일본 제조사들이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현지에 공장을 세워 가격 대비 품질이 좋은 차를 만들어 파는 도요타와 혼다에 미국 업체들은 이렇다 할 대항을 하지 못한 채 안방을 내줬다. 특히 크라이슬러는 1989년 도요타에 판매 3위 자리를 내줬고 혼다의 거센 추격을 받는 처지가 됐다. 크라이슬러는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다른 경쟁 업체에 비해 경쟁력이 취약했다. 유럽과 중국 등에 글로벌 판매망을 갖고 있던 두 회사와 달리 크라이슬러는 미국 내 판매 의존도가 95%에 달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프랑스 르노로부터 인수한 AMC도 그룹의 재정 상황을 악화시켰다. AMC는 지프 브랜드를 갖고 있었지만 신차 개발 여력이 바닥난 크라이슬러 밑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크라이슬러는 유럽 시장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한 때 르노와 공동 생산을 추진하던 크라이슬러는 이내 피아트로 눈길을 돌렸다. 피아트는 미국 시장이 필요했고 크라이슬러는 유럽과 피아트의 소형차 기술을 원했다. 두 회사의 깊은 인연은 1990년부터 시작된 셈이다. 다양한 회사와 합작·협업을 거듭하던 크라이슬러는 아이아코카가 회사를 떠난 후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언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1995년 4월 12일 주식 10%(3600만 주)를 보유한 커코리언의 투자회사 트래신더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커코리언은 90%의 주식을 전일 주가 수준보다 40% 비싼 주당 55달러에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총 매수액이 228억 달러에 달하는 당시 기준으로 사상 최대치였다. 흥미로운 건 500만 달러 규모의 주식을 들고 있던 아이아코카 역시 커코리언의 매수에 동참한 것이다. 로버트 이튼 당시 크라이슬러 회장은 공식적으로 매각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뒤이어 노동조합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들은 커코리언이 단순한 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또 사측은 아이아코카를 기업 정보 누설 혐의로 제소하기도 했다. 커코리언과 크라이슬러의 공방전은 결국 크라이슬러가 커코리언에게 이사 자리를 내주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크라이슬러 경영진은 그와 싸우느라 경영에 전념할 수 없었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슈렘프 회장이 이끄는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에 내민 손길은 따뜻했다. 양산 브랜드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시장을 원한 다임러그룹, 앞선 기술과 투자금, 유럽 시장을 갈망한 크라이슬러는 서로를 채워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크라이슬러를 집 안에 들인 다임러그룹은 좀처럼 방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벤츠와의 협업을 기대한 크라이슬러에는 뜻밖의 홀대였다. 벤츠가 브랜드 위상이 훼손될 것을 우려해 크라이슬러와의 교류를 피했다. 이 때문에 크라이슬러는 합병 후에도 여전히 미국 시장 내 경쟁 심화에 따른 판매 부진 등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벤츠와 크라이슬러 간의 부품 공용화를 거친 첫 모델은 합병 후 5년이 지난 2003년에야 등장했다. 독일 본사는 2000년 11월 벤츠 임원 중 한 사람을 크라이슬러의 새 최고경영자(CEO)로 임명했다. 바로 디터 제체 사장, 지금의 다임러그룹의 회장이다. 벤츠 출신이 경영을 맡으면서 자연스레 두 회사 간 교류에 물꼬가 터졌다. 첫 합작품은 크라이슬러의 스포츠카 ‘크로스파이어’였다. 제체 사장은 이 차량의 디자인에 만족했고 양산을 추진했지만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런데 2001년 미국 북미국제오토쇼(디트로이트모터쇼)에 출품된 크로스파이어를 본 벤츠의 한 경영진이 “차체 길이를 줄이면 벤츠 SLK와 플랫폼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얻었다. 슈렘프 회장은 두 회사 간의 부품 공용화 등 협업을 전담하는 전략실행기구(EAC)를 발족했다.
벤츠의 브랜드 가치 손상을 우려한 다임러 부품 공용화, 플랫폼 통합은 오늘날 신차 개발 시 경쟁력 향상, 원가절감을 위한 필수 요소다. 당시 다임러그룹의 경영진도 이 장점들을 모르지 않았다. 문제는 다임러그룹의 경영진이 벤츠의 브랜드 가치 하락에 대한 우려를 씻어 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두 회사 간의 뒤늦은 협업도 크라이슬러를 회생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끝내 크라이슬러는 벤츠의 후광효과를 보지 못했다. 게다가 다임러그룹은 크라이슬러 후에 미쓰비시자동차 인수를 추진했고 현대차와의 제휴도 꾀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슈렘프 회장의 공격적인 몸집 불리기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실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2005년 말 사임했다. 임기를 2년 남겨 둔 상황에서 비참한 퇴장이었다. 슈렘프 회장의 자리는 디터 제체가 이어 받았다. 지휘봉을 잡은 그는 그동안 맺었던 고리를 과감하게 끊어 냈다. 2007년 5월 다임러는 크라이슬러의 지분 80.1%를 사모 펀드인 서버러스캐피털매니지먼트에 매각했다. 다임러 벤츠와 크라이슬러가 1998년 합병한 지 9년 만이다. 매각 가격은 74억 달러였다. 다임러그룹이 크라이슬러 인수에 쏟아부은 360억 달러의 5분에 1에 지나지 않는 금액이었다. 다임러는 잔여 지분 19.9%도 2009년 서버러스에 모두 넘겼다. 2007년 홀로 내던져진 크라이슬러의 운명은 위태로웠다. 당시 ‘크라이슬러는 문을 닫을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돌았다. 서버러스가 연방 정부에 “회사를 1달러에 팔겠다”고 제안할 정도였다. 결국 2009년 4월 30일 크라이슬러는 법원에 파산보호 신청을 했다. 오바마 정부는 크라이슬러 회생 방안을 고민했다. 결론은 이탈리아의 피아트그룹과 합병하는 것이었다.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에서 일하는 4만7000명의 근로자들이 한 배를 타는 순간이었다. 합병은 이탈리아계 캐나다인인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 회장이 진두지휘했다. “크라이슬러를 되살리겠습니다. 약속드리죠.” 2009년 6월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의 크라이슬러 본사를 방문한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피아트그룹 CEO가 직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정장이 아닌 스웨터와 면바지 차림,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는 골초의 말을 신뢰하는 직원들은 많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2년 뒤 직원들은 그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마르치오네는 2년 만에 미국과 캐나다 정부로부터 받은 융자 76억 달러를 예정보다 일찍 상환했다. 말로는 합쳤지만 따로 운영됐던 다임러크라이슬러와 달리 피아트크라이슬러는 한 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했다. 마르치오네는 크라이슬러의 경영권을 쥔 지 6개월 만에 5개년 계획을 내놓았다. 이탈리아 특유의 디자인과 장인 정신을 담아 제품 경쟁력과 수익성을 높인 뒤 이른 시일 내에 단일 그룹을 탄생시키는 게 목표였다. 투박함 벗어던지고 이탈리아 감성으로 재탄생 그는 크라이슬러 경영진을 대폭 축소했고 전임 회장들이 사용하던 크고 화려한 사무실도 없앴다. 본사 기술센터 4층에 엔지니어링·디자인·생산담당 중역들과 비슷한 사무실을 마련했다. 일밖에 모르는 워커홀릭답게 크라이슬러의 조직 구조를 수평화한 뒤 25명의 임원들로부터 직접 보고를 받았다. 2009년 132만 대까지 곤두박질쳤던 크라이슬러의 판매량은 2010년 152만 대, 2011년 186만 대, 2012년 219만 대까지 급증했다. 작년엔 240만 대를 기록했다. 피아트와 합병하면서 지속적인 회복세를 보였다. 마르치오네는 2011년 9월 피아트 크라이슬러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그로부터 2년 4개월 뒤인 2014년 1월 1일 피아트는 전미자동차노동조합(UAW) 산하 퇴직자건강보험기금(VEBA)이 보유 중인 크라이슬러의 잔여 지분 41.46%를 36억5000만 달러(3조8150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피아트는 인수 조건으로 향후 4년 동안 7억 달러의 현금을 VEBA에 연금신탁으로 맡기기로 했다.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를 완전히 인수함으로써 이탈리아 직원 8만 명을 포함해 전체 직원 19만7000명을 거느리게 된 거대 자동차 기업이 완성됐다. 이에 따라 피아트그룹 산하의 피아트, 알파 로메오, 란치아, 아바스, 피아트 트럭, 마세라티, 페라리와 크라이슬러그룹의 크라이슬러와 지프, 닷지, 램, SRT, 모파 등 연간 43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세계 7위의 자동차 업체가 된 것이다. 두 회사 간의 장점을 결합해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전략도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았다. 크라이슬러 300C와 지프 그랜드 체로키 등은 이탈리아의 세련된 감각으로 빚은 실내외 디자인과 꼼꼼한 끝마무리로 미국 차 특유의 투박함을 벗어던졌다. 시장은 판매 증가로 화답했다. 미국 시장 회복기와 맞물린 크라이슬러의 고성장은 이탈리아 경기 침체로 자동차 판매량이 위축된 피아트그룹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 줬다. 피아트크라이슬러는 지분 인수를 통해 합병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간판도 FCA로 새로 달았다. 1899년 처음 둥지를 튼 후 115년간 유지해 오던 본사의 자리도 옮겼다. FCA의 새 등기상 본사를 네덜란드로 정한 것이다. 지역 중심의 브랜드를 넘어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 거듭나겠다는 그룹의 의지를 보인 것이다. 마르치오네 회장은 2014년부터 5년간 신차 연구·개발(R&D)과 자본 투자에 480억 유로(68조3000억 원)를 투자하는 내용의 5개년 계획도 발표했다. 이를 통해 5년 뒤 글로벌 자동차 판매 대수 목표치를 지난해보다 60% 증가한 700만 대, 연매출은 52% 늘어난 1320억 유로로 잡았다. 순이익 목표치는 47억~55억 유로로 지난해 19억5000만 유로보다 두 배 이상 높였다. 일각에선 이 목표가 지나치게 공격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치오네 회장은 자신만만하다. 이제 다시 출발점에 선 FCA의 행보에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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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bal View(Eye) & Professional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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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하나의 질문이 다른 여러 질문들을 껴안고 있는 경우가 있다. 사랑이란 질문 안에 미움과 희생과 후회와 용서 같은 질문들이 숨어 있듯이. 그러한 이치를 알면 인간과 세상을 보다 깊이 바라볼 수 있을 것이고, 아니라면 향후 삶의 갈피갈피마다 혹독한 대가를 치를 일들이 꽤 될 것이다.
한 개인의 행로만이 아니라 한 국가의 운명에서 또한 마찬가지다. 가령, 상상해보자. 만약 통일 대한민국이 실현된다면 주사파나 민족해방론(NL)자들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언뜻 계산해보면, 북한이 소멸되면서 우리 한민족 전체가 비로소 통일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국가로 수렴됐으니 음으로든 양으로든 저들이 존속될 리 없을 것 같지만 나의 견해는 영 다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통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폭넓게 사고를 칠 주체는 평소 우리가 자부심에 차 의지하는 그 ‘민족’이라는 미신일 것이다. 그러니 민족해방론자나 주사파와 같은 병든 민족주의의 스페셜리스트들은 증발되기는커녕 더 독한 변종으로 진화해 형형할 공산이 적잖다.
이는 민족이라는 무지에 대한 우리의 기질과 착종된 우리 역사와의 콜라보레이션이다. 본시 반도에서는 제노사이드가 자주 일어나 발칸반도가 저 지경이라지만, 전 세계에서 민족주의가 드세기로는 1등이 북한이요, 2등이 남한인 것은 분명하다. 통일 대한민국에서 차별당하는 과거 북한의 인민들은 외국인들과 다문화적 요소들에 폭력을 일삼을 테고, 과거 남한의 국민들은 그러한 혼돈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며 길을 잃기 십상일 것이다. 통일 독일이 한참 그랬고, 우리는 그 수천 배의 하중을 견뎌내야 하리라.
민족이라는 개념은 대략 19세기를 거치면서 서구에서 생겨난 국민국가(nation-state)의 그 ‘네이션(nation)’을 일본인들이 ‘민족’이라고 번역하면서 동양으로 넘어온 것이다. 우리의 수많은 사회적 고질병들은 우리가 정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데서 연유한다. 우리가 고작 말만 똑바로 해도 필경 좌파니 우파니 하는 개와 고양이 싸움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왜냐. 최소한 자기들이 좌파도 우파도 아닌 그저 ‘날라리’에 불과하다는 사실만큼은 깨달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대로라면 저 중동의 수니파와 시아파처럼 우리가 통일 대한민국 안에서 서로를 학살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인간은 자신이 정의로워서 으르렁댄다고 착각한다. 천만에. 우리는 욕망 때문에 물어뜯고 무식해서 원한을 갖는다. 우리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민족이란 기실 종족인 셈인데, 이것 역시 민족처럼 매우 비현실적이고 비과학적인 망상에 불과하니 순결한 겨레라는 것은 말짱 새빨간 거짓말이다. 순결한 척 하는 것들은 다 악마의 자식임을 세계사는 증명한다.
민족국가라는 것은 곧 국민국가로서 누구든지 의무를 다하고 권리를 누리면 주권국민이 될 수 있는 나라다. 공상과학 소설가이자 문명비평가인 허버트 조지 웰스는 “우리의 진정한 민족은 인류다”고 갈파했다. 우리는 세계인으로서 국민이 돼야 한다. 우리는 민족이란 허구를 감상화해서 몰핀을 맞고 있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이렇게들 아무렇게나 사랑하고 쉽게 미워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증오와 비합리로 연명하며 중환자실에 누워 있다. 우리가 아직 온전한 국민국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연옥인 것이다. 제 이념과 이득을 악쓰기 전에 우리들 각자는 스스로 근대인이 맞는지부터 되돌아봐야 한다. 대한민국은 아직 현대국가는커녕 근대국가조차도 아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라의 주인이라는 우리들 자신 때문이다. 우리의 불행이 우리에게서 말고 다른 데서 왔을 리 없다. 목표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다면 장차 해일처럼 닥칠 통일 대한민국은 기껏 연옥이 아니라 당연히 지옥일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다. 요컨대 민족과 같은 환각에서 깨어나 국가라는 과학을 자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찡얼대는 가족이 아니라 무책임을 경멸하는 민주공화국의 국민이다. 토인비는 『역사의 연구』에서 “국가의 정신은 종족주의라는 낡은 단지 안에서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술을 만들기 위한 효모다”라고 했다. 국가라는 질문 속에는 현재의 우리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질문들이 너무 많이 도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괴로워도 우리는 우리의 이 사회과학적 무명(無明)을 정직하게 직시해 스스로를 치료하고 재활해야 한다. 끔찍한 소리지만, 그것 말고는 우리가 한 국가 안에서 함께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시간이 벌써 가까이 와 있다.
이응준 1990년 계간 문학과 비평에 ‘깨달음은 갑자기 찾아온다’로 등단했다. 장편소설 『내 연애의 모든 것』 『국가의 사생활』과 시집 『애인』 등을 냈다. .......................................................................................................................................
[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자신감으로 온라인에 새 바람 … 오프라인 세상도 바꿀까
한 여성기업인 모임에서 짧은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이야기가 끝나자 누군가 물었다. “여성이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고자 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내 대답은 이랬다. “친절한 공감자(共感者)다. ‘그만하면 애썼다. 마음 가는 대로 하라’며 등 토닥거려주는 사람들이다.” 청중들의 얼굴에 ‘뭔 소리야?’ 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나는 말을 이었다. “직위가 올라가고 영향력이 커질수록 여성의 불안감은 커진다. 사람들이 자신을 욕심 많은, 설치는 여자라 생각할까 봐 노심초사한다. 가족에 대한 죄책감도 깊어진다. 그만 주저앉고 싶을 때 바로 그 공감자들이 나타나 속삭인다. ‘그만둬 버려, 나댄다는 욕 안 먹어도 되고 스트레스도 사라질 거야’. 거기 호응하면 당신 커리어는 단절된다.” 그리고 덧붙였다. “다 던져버리려 할 때 ‘정말 할 만큼 했냐, 네 자신을 스스로에게 충분히 증명했냐’고 진지하게 되물어주는 사람을 만나라. 당신에게는 더 큰 야망이 어울린다고 격려해 주는 친구를 사귀어라.” 나로 말하자면 위기의 순간마다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멘토가 있어 지금껏 경력을 이어올 수 있었다. 한 분은 “칼이 짧으면 한 발 더 다가가 찔러라”는 말로 나를 독려했다. 또 한 분은 “장(長) 역할을 해 보기 전엔 사표를 쓰지 말라”고 조언했다. 엄마 없이 크다시피 하는 아들에게 미안해 울 때 또 다른 한 분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 “상처 없는 어린 시절이 어디 있어. 엄마가 정말 애쓰고 있다는 걸 아이가 알면 되는 거야.” 저서 『린인』 통해 여성의 사회진출 독려 지난해 여름, 나는 일면식도 없는 한 여성의 책에서 그와 비슷한 위로와 격려를 받았다.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45)의 『린 인(Lean In)』이다. 우리 말로 바꾸자면 ‘뛰어들라’ ‘들이대라’ 정도가 될 이 책 제목은 샌드버그가 여성의 사회 진출을 독려하고자 만든 비영리 재단(LeanIn.org)의 이름이기도 하다. 영어 원서에는 다음과 같은 부제가 붙어있다. ‘여성, 일, 그리고 주도하려는 의지(Women, Work and the Will to Lead)’. 말 그대로 여성에게 “자신감을 가지고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라”는 주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샌드버그의 말이기에 강력하고 설득력 있다. 한편으로는 본인이 책 서문에서 예견한 것처럼 ‘남녀 모두의 심기를 건드리며’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여성은 엘리트 고액 연봉자의 배부른 주장이란 비판을, 어떤 남성들은 이미 알파 걸이 넘치는 세상에서 여자가 어떻게 더 잘 나가냐는 비아냥을 쏟아냈다. 책 출간 1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 샌드버그는 논란에서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미국의 가장 유력한 여성 대통령 후보 중 하나로 급부상했다. 사업적 성공 또한 눈부시다.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는 페이스북 2인자로서, 자신이 수립한 수익 모델을 통해 흑자를 이루고 회사 가치를 크게 끌어올렸다. 스스로 1조 원 이상의 재산을 일군, 미국의 최연소 여성 갑부가 됐다. 그녀 말처럼 온갖 종류의 두려움에 맞서 위험을 감수한 대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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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지난해 7월 방한 중 진행한 연세대 강연에서 여성들에게 “평생 당신 꿈을 응원해줄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 것, 가정을 이루고 싶다 해서 일에 열정을 쏟길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중앙포토] | 유대계인 그녀는 워싱턴D.C.에서 태어나 마이애미에서 자랐다. 하버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을 최우등 졸업한 뒤 맥킨지, 미국 재무부 등을 거쳐 2001년 구글에 입사했다. 그녀가 신생 벤처인 구글 입사를 망설이자 당시 CEO이던 에릭 슈미트가 했다는 말은 유명하다. “직업 선택 시 중요한 단 한 가지는 성장 속도다. 로켓에 탈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자리인지 묻지 마라. 그냥 올라 타라.” 이후 그녀는 글로벌 비즈니스 책임자로서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이 회사 매출의 절반이 그녀 부서에서 발생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2008년 새 로켓으로 옮겨 탄다. 페이스북이었다. 다른 기업으로부터 CEO 자리를 제안 받은 상태였지만 페이스북의 가치를 알아보고 스물 세 살 저커버그 밑에서 일하기로 한다. 그녀는 201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식사에서 이런 요지의 말을 했다. “실시간 소통이 일반화한 세상에서 커리어는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다. 정글짐이다. 수직 승진 같은 건 생각지도 마라. 직함이나 연봉에 매몰되지 마라. 대신 회사의 사명(mission)과 성장성, 담당 업무의 영향력을 따져라. 이력 말고 직무능력을 쌓아라.” 그 몇 달 뒤 그녀는 세계 최대 지식포럼인 TED 무대에 선다. 사람들은 그녀가 소셜 마케팅의 미래를 이야기하리라 짐작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샌드버그는 ‘왜 여성 리더는 소수인가’라는 주제 하에, 사회 최상위층에 오른 여성들의 은밀한 금기를 깨뜨렸다. 이들은 자신이 ‘여성이기에 주목 받는 상황’을 극도로 꺼린다. 남성과 대등하게 경쟁해 이겼다는 사실을 무엇보다 중시한다. 하지만 무대에 오른 그녀는 여자로서의 자기 삶을 담담히 털어놓기 시작했다. 실패한 첫 결혼, 재혼과 임신, 극심한 입덧, 자리에서 밀려날까 출산휴가 중에도 노트북을 끼고 산 사연. 회사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린 이유. 그녀는 이런 경험과 주변 여성들의 삶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유능하고 야망이 큰 여성은 남녀 모두로부터 미움을 받는다. 여성들은 이를 해결하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다. 반복된 부정적 경험은 그녀에게 불안·두려움·죄책감을 안긴다. 결국 자신감을 잃고 뒤로 물러 앉게 된다. 자녀 위해 9시 출근, 5시 30분 퇴근 철저 샌드버그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성들이 먼저 ‘일을 주도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포춘 500대 기업 CEO 중 여성은 겨우 4%, 미국 상원에서 여성 의원은 20%에 불과하다. 더 많은 여성이 내면의 두려움을 깨고 리더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을 때 세상은 바뀐다. 그 자신도 중역이 됨으로써 기업 문화를 바꾸고, 여성 후배들의 멘토이자 롤 모델로서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음을 설명한다. 그렇다고 무한 경쟁에 뛰어들라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매일 9시에 출근해 5시30분에 퇴근한다. 그녀는 “아이들과 저녁을 함께 하려면 어쩔 수 없다. 못 다 한 일은 아이들을 재운 뒤 한다. 중요한 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자신감 있게 실천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울러 배우자의 지원 없이 여성이 고위직에 오르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 자신도 사업가 남편과 가사 및 육아를 절반씩 부담하게 되기까지 지난한 논쟁을 거쳤음을 고백한다. TED 발표 이후 샌드버그는 베스트 셀러 작가이자 사회운동가로서의 명성을 더하게 됐다. 지난 4월에는 재산 절반을 기부한다고 공표했다. 산업계를 넘어 정치·사회 영역으로 무섭게 영향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샌드버그가 즐겨 인용하는 저커버그의 말이 있다. “위험을 짊어져라. 두려움을 모른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두려움 자체를 없앨 수는 없다. 하지만 맞서 싸울 수는 있다. 대차게 한 번 붙어보지도 않고 회의 테이블에서 지레 물러앉고 마는 여성들에게 샌드버그가 주는 진심 어린 조언이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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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얼경제사] 임진왜란으로 전세계 노예무역 확대 … 근거는?
기독교적 내용을 담은 성화(聖畵)가 있다. 중앙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보이고, 그 위로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있고 좌우로 성자와 성부가 위치하여 삼위일체를 완성하고 있다. 그림의 아래쪽으로는 교황과 군주의 모습이 보인다. 여기까지는 유럽적 색채가 강하다. 그런데 그림의 중앙 부분이 이채롭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 삼각형의 붉은 산 안에 위치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사방으로 길이 나 있고 나무와 동물들이 보인다. 산 아래쪽에 유럽적이지 않은 모습의 인물이 황금색 복장을 한 채 서 있다. 산의 양 옆으로 보이는 하늘에는 해와 달이 그려져 있다. 그림 1은 과연 무엇을 묘사하고 있는 것일까?
이 그림의 소재는 오늘날의 볼리비아에 위치한 세로 리코(Cerro Rico)라는 곳이다. 세로 리코는 ‘부유한 산’이라는 뜻이다. 이 산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그 이유는 포토시(Potosi)라는 엄청난 규모의 은광이 이 산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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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화가 미상, 『세로 리코의 성모』, 1720년 이전. 포토시 은광이 있는 삼각형 붉은산의 윗부분에 성모 마리아가 위치하고 있다. |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어지는 새 항로를 개척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금과 은을 확보하는 데에 힘을 쏟았다. 초기에 이들은 인디오 원주민들이 보유한 금은공예품을 탈취하는 데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원주민으로부터 빼앗을 귀금속이 더 이상 없다고 판단되자 정복자들의 관심은 금은 광맥을 직접 찾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마침내 1545년 그들은 포토시에서 초대형 은광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인디오 원주민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하여 전통적인 용해방식으로 은을 채굴·제련하였다.
그런데 은의 함유량이 높은 광맥이 점차 고갈되자 은광의 경제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그런데 1570년쯤 스페인에서 수은을 이용하여 저급 광맥에서도 값싸게 은을 추출하는 기술인 수은아말감법이 개발되었다. 그리고 때마침 페루에서 대규모 수은광산이 개발되면서 포토시의 은 생산은 다시 증가하게 되었다. 그림 2는 1584년에 제작된 포토시 광산의 그림이다. 은광 아래쪽으로 광산촌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아래로 노동자들이 제련작업을 하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은 생산이 절정에 이르렀던 1600년쯤에 이 도시의 인구는 1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해발 4000m에 육박하는 장소에 서반구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도시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포토시광산의 채굴 장면은 드 브리(Theodorus de Bry)가 남긴 작품에 가장 꼼꼼하게 묘사되어 있다. 드 브리는 16세기에 활약한 대표적인 동판화가이자 출판가였다. 그는 대부분의 작품을 탐험가들이 남긴 기록에 의거하여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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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화가 미상, 『포토시의 세로 리코』, 1584년. | 따라서 탐험의 모습과 신세계의 풍습을 비교적 정확하게 알려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그가 1590년에 제작한 포토시광산의 모습은 매우 독특하다(그림 3). 세로 리코의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묘사한 점이 눈길을 끈다. 산꼭대기의 구멍을 통해 인디오 원주민들이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채굴작업을 진행한다. 이들은 벌거벗은 채 횃불을 밝히고 힘들게 노동을 하고 있다. 이들은 채굴한 은덩이를 부대에 담아 어깨에 짊어지고 사다리를 통해 광산 밖으로 나온다. 이 은덩이는 다시 그림의 왼편과 오른편 위쪽에 보이는 것처럼 라마와 같은 가축을 이용하여 다른 곳으로 수송된다.
그림에서 느낄 수 있듯이, 원주민 광부들의 노동조건은 지극히 열악했다. 고된 노역이 장시간 이어졌고 사고의 위험도 컸다. 또 이들은 대부분 낮은 지대에서 살다가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로서 낯선 기후와 음식, 가혹한 채찍질로 인해 죽거나 노동 능력을 잃는 경우가 허다했다. 당시에 세로 리코는 ‘사람을 잡아먹는 산’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부유한 산’이 엄청난 인명 희생을 가차없이 요구하는 상황, 그리고 부족한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인들을 노예로 사들여 오게 되는 상황이 바로 대항해시대가 드러내기 꺼리는 속살이었다.
이렇게 생산된 아메리카의 은은 어디로 갔을까? 스페인인들은 채굴한 은의 대부분을 자국으로 보냈다. 이 은은 스페인이 왕위계승전쟁을 치르고, 종교개혁의 와중에 신교도를 압박하고, 서유럽으로부터 많은 물품을 수입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 과정에서 은이 서유럽 전역으로 유입되었는데, 이는 다시 서유럽이 발트 해 연안에서 곡물과 목재를 수입하고, 레반트에서 동방의 생산품을 구매하고, 무엇보다도 남아프리카를 도는 인도항로를 통해 인도와 중국의 인기상품을 수입하는 데에 사용됐다. 한편 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은의 일부는 태평양을 횡단하는 세계 최장항로를 통해 마닐라에 있는 상관에 보내져 아시아 물품을 구입하는 데에 소요되었다. 이렇듯 세계무역망을 통해 아메리카에서 채굴된 은은 지구를 돌고 돌아 중국과 인도로 모아졌다. 당시 아메리카를 제외하고 은을 가장 많이 생산한 국가는 일본이었는데, 일본의 은도 수출항 나가사키, 그리고 쓰시마와 류큐(琉球, 지금의 오키나와)를 거쳐 중국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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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3 드 브리, 『포토시』, 1590년. | 은이 풍부해진 중국은 조세를 은화로 납부하도록 제도를 개편하였다. 명대 후기와 청대에 실시된 일조편법(一條鞭法)과 지정은제(地丁銀制)가 바로 이런 제도였다. 새 조세제도는 은에 대한 수요를 늘려 세계적으로 은을 중국으로 더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였다. 마치 전 세계를 연결한 순환펌프가 작동하듯이 은이 지구를 일주하여 중국으로 빨려들었다. 대항해시대에 세계는 은을 매개로 하여 단일한 경제권으로 통합되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정세도 세계적 영향을 끼치는 상황이 되었다.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오자 명은 군대를 파병하는데, 이에 따라 막대한 양의 은의 필요해졌다. 임진왜란 시기와 전쟁 후에도 명은 부족한 은을 조달하기 위해 조선에 은을 요구했다. 세계적으로는 명이 은의 순환펌프에 압력을 높였을 것이고 그에 따라 아메리카에서는 은 채굴의 필요성이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부족한 광산 노동력을 보충하기 위해 아프리카로부터 노예수입을 더 늘렸을 것이다. 은을 매개로 지구 전체가 연결된 상황에서, 임진왜란이 세계적 노예무역의 증가로 이어졌으리라는 추정은 전혀 비현실적이지 않다.
이렇게 대항해시대에 은은 식민지 체제와 국제 무역망을 통해 세계를 일주하였다. 당시에 은의 종착지가 중국과 인도였다는 사실은 아시아의 경제가 국제적 경쟁력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이런 세계적 네트워크의 형성이 대항해시대를 연 유럽인들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은 향후 세계경제의 무게중심이 점차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옮겨가리라는 점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림 1로 돌아가 보자. 그림의 아래 왼편에는 교황이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묘사돼 있다. 오른편에는 스페인의 국왕이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카를 5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있다. 이들 위로 보이는 황금색 복장의 작은 인물은 잉카제국의 황제로, 유럽인이 옮겨온 천연두에 걸려 사망한 우아이나 카팍(Huayna Capac)이다. 왜소하게 표현된 카팍 뒤로 붉은 산이 성모를 덮고 있는데, 역사가들은 이를 안데스 산맥의 토지의 여신인 파차마마(Pachamama)를 성모상과 결합시킨 것이라고 해석한다. 산의 양옆으로 떠 있는 해와 달도 잉카제국에서 사용되던 형상이다. 유럽의 기독교와 잉카의 전통신앙을 혼합한 형태의 작품이다.
이른바 ‘신크레티즘(Syncretism: 혼합주의)’의 색채가 다분한 이런 작품들은 18세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이들은 공통으로 신세계 믿음 체계의 일면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것이 구세계 믿음 체계에 흡수되고 복속된 것으로 묘사한다. 유럽의 아메리카 진출은 물리적 정복만이 아니라 정신적 정복이기도 했다는 점을 『세로 리코의 성모』는 우리에게 말하고자 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채굴된 은이 우리나라의 역사에 영향을 끼치게 된 점이야말로 4세기 전 대항해시대가 초래한 세계 경제의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송병건 서울대 경제학과에서 학석사 학위를 마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사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제사회학회 이사를 맡고 있으며 『세계경제사 들어서기』(2013), 『경제사:세계화와 세계경제의 역사』(2012), 『영국 근대화의 재구성』(2008) 등 경제사 관련 다수 저서가 있다. ...........................................................................................................................................
“국민과 청와대 사이, 70년대가 훨씬 가까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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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영 전 청와대 비서관 | 지난 15일은 육영수 여사 서거 40주기였다. 1974년 8월 15일 오후 7시. 청와대 본관 1층 영부인 접견실에 육 여사의 유해가 임시로 안치됐다. 육영수 여사를 4년간 보좌한 김두영 당시 청와대 제2부속실 행정관은 마구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마냥 서서 울었다. 갑자기 누군가 김 비서관의 목을 끌어안고 대성통곡했다. 육 여사의 남편, 대통령 박정희였다. 현재와 후세의 평가와 반성을 위해서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자료가 많을수록 좋다. 대통령과 영부인을 가까운 거리에서 접한 사람들의 증언도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두영(73·사진) 전 비서관이 최근 출간한 『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대양미디어·작은 사진)는 중요한 사료다. 1971년부터 89년까지 청와대 비서관으로 일한 그로부터 인간 박정희·육영수에 대해 듣기 위해 김 전 비서관을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출간 동기는? “1996년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www.516.or.kr)의 결성에 발기인 대표로서 참여했다. 이번에 나온 책 내용을 이 모임의 웹사이트에 올리자 방문자가 크게 늘었다. 인터넷을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책으로 출간하게 됐다.” -모임은 어느 지역이 가장 활발한가. “부산 지역이 제일 활발하다. 그쪽 회장단 지도부가 제일 열심히 잘 하는 것 같다. 역시 리더십이 중요하다. 국가 관리 능력과 통찰력이 있는 지도자가 선도하면 국민은 믿고 따라가게 돼 있다. 박 대통령 시대에 경제인·근로자·지도자가 삼위일체가 돼 전 국민이 힘을 합쳤기 때문에 산업화가 성공했다고 본다.” -책을 읽어보니 아이들을 기업 경영인 또는 지도자로 키우려는 부모가 읽어도 유익한 내용이다. “글쎄. 아직 그런 생각은 못 했다. 책을 읽은 사람들 반응이 두 가지다. ‘눈물이 많이 났다’는 말이 의외로 많다. 또 ‘박 대통령이 무섭고 냉정한 줄 알았는데 그렇게 부드러운 데가 있었느냐’고도 묻는다.” -광화문 세종대왕상 자리가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자리였을 수도 있다. 한 분은 ‘건국의 아버지’, 한 분은 ‘산업화의 아버지’ 아닌가. 아쉽게도 두 분은 독재를 했다. “맞다. 박 대통령은 혁명가다. 혁명가는 기존 질서·체제를 무너뜨린다. 혁명을 하면서도 박 대통령이 항상 염두에 둔 것은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였다. 경제 발전으로 중산층이 형성돼야 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제도만으로는 어렵다. 짧은 기간 내에 민주주의에 필요한 경제적인 역량을 키우다 보니 무리가 왔다. 당시 북한이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앞서갔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빨리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한 심정도 있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 통일도 우리가 잘 사는 나라가 됐을 때 가능하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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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수 여사에게 청와대 정문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의 뒷모습. (1974년) [중앙포토] |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일본 군복을 입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만약 사실이라고 해도 ‘친일’ 문제가 아니라 ‘젊은 날의 회상’이라는 사적인 문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건 천부당만부당한 말이다. 말이 안 된다. 그런 일은 절대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대통령이 정신이 이상한 것이다. 독립군을 토벌했다는 주장도 당시 기록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다. 거리가 멀었고 독립군도 많이 사라지고 없는 때였다.” -박 대통령은 평등주의자였나. “박 대통령은 유교적인 교육을 받아 예절이 깍듯했다. 청와대의 이발사건, 요리사건 모든 아랫사람들도 항상 지극히 평등하게 대했다. 박 대통령과 박태준 포철 회장도 부하-상관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신뢰하는 동지 관계였다고 할 수 있다.” -‘이상한’ 소문들도 있는데. “소문이 한 번 나면 사실인 양 소문이 퍼져버렸다. 박 대통령이 샤워하다 욕조에서 넘어져서 기침을 못 할 정도로 늑골에 금이 간 적이 있었다. 외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니까 ‘대통령이 간암에 걸렸다’는 소문이 났다.” -박 대통령이 가장 행복해 보인 때는? “농민들이 잘 사는 것을 봤을 때 제일 좋아했다. 가족끼리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휴가 가서 육 여사와 함께 단란한 시간을 보낼 때도 행복해 보였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항상 골똘히 사색하는 모습이었다. 언제나 정신이나 몸가짐에 흐트러짐이 없었다.”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 때는? “국가 정책에 실수가 있으면 호되게 야단을 쳤다. 육 여사께서 돌아가시고 병원에 들어오셨을 때, 하도 무섭게 보여서 잊을 수가 없다. 또 당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이 아들을 군대에 안 보내고 해외에 보냈다. 이게 사회 문제화되자 박 대통령은 당직자·고위 공직자에게 경고 서신을 보냈다. 대통령은 ‘군번 없으면 청와대에서 내보내라’고 했다. 그런 면에서 단호했다.” -박 대통령이 제일 싫어한 것은? “아부하는 사람들을 아주 싫어했다. 특히 행사장에서 그냥 인사하고 가면 되는데 괜히 귓속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마치 자신이 대통령과 친한 듯 쓸데없는 말을 귀에 대고 하려는 그런 사람들을 제일 싫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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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에서 본 인간 박정희 인간 육영수』의 표지. | -책에 보면 기업인 중에서도 정주영 회장을 특히 좋아했다. 이유가 뭔가. “맡긴 일을 해냈기 때문이다. 당시 장비·기술 등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일을 해내니까 좋게 평가했다. 정 회장은 ‘산을 깨면 필요한 돌이 나온다’는 식으로 다른 사람들이 생각 못 하는 아이디어를 냈다.” -박 대통령, 육 여사의 공통점은? “사생관(死生觀)이 분명했다. 두 분의 사생관의 핵심은 애국심이었다. 박 대통령의 모토는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였다. 역사상 이렇게 당당하게 말한 지도자가 또 있을까. 육영수 여사도 마찬가지다. 8·15 광복절 저격 영상을 보면, 총소리를 듣고 모두 다 숨는데 육 여사 혼자 앉아 있었다.” -두 분은 어떤 책을 많이 읽었나. “박 대통령은 역사책을 많이 봤고 육 여사는 시나 수필을 좋아해서 문인들을 많이 도왔다. 박 대통령은 국사 지식이 해박했다. 역사책을 사서 비서실에 나눠주기도 했다.” -10대였을 때의 박근혜 대통령은. “3남매 중에서도 제일 모범적이었다. 공부도 잘하고 부모님께 걱정 끼치는 일도 없었다. 부모들도 그를 각별히 존중했다.” -육 여사에게 민원이 많이 들어왔다는데. “육 여사는 모든 민원을 자신에게 바로 보내라고 했다. 좋은 얘기건 나쁜 얘기건 거르지 않고 들으려 했다. 육 여사는 일반인들이 보내는 편지를 소중히 여겼다. 민원을 성의 있게 처리하다 보니 소문이 나서 계속 편지가 많이 왔다.” -어떤 면에선 70년대에 오히려 청와대와 국민 간의 소통이 더 잘 됐다. “공감한다. 일반 부처들이 처리하지 못한 민원을 청와대가 해결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정리=박종화 인턴기자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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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인문학] 알고자 하는 인간 본능, 스마트폰 등장과 함께 사라지다
“밤하늘의 별을 보고 길을 찾아 가던 시대는 복되도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마르크스주의 미학자 게오르그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에 나오는 말이다. 언제 들어도 가슴이 뛰는 구절이다. 루카치의 말대로,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이전엔 별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었다. 별의 운행이 지상의 계절을 만들고, 사계절의 리듬 속에서 인생의 희노애락이 펼쳐진다. 이 ‘천지인’의 삼중주를 일러 도(道) 혹은 로고스라 부른다.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지식의 시원에 점성술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 무한한 별의 세계와 이 유한한 인간의 운명이 하나로 연결되다니, 이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어디 있으랴. 이로써 알 수 있는 바, 인간은 원초적으로 로고스적 존재다. 로고스는 말·지성·진리로 번역되는 낱말이다. 앎 혹은 지혜라 번역해도 무방하다. 말과 지성, 말과 진리의 직접성을 보여주는 표현인 셈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요한복음) 이것이 기독교의 창조론이다. 여기에 따르면, 말씀이 곧 신이다. 말씀이 세상을 창조했으므로. 신-말씀-창조, 이것이 로고스를 둘러싼 의미망이다. 멕시코의 아즈텍 제국의 신화는 더 리얼하다. “창조주는 빙산과 같았다! 그는 바위처럼 침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빙산을 던져 버리고 침묵을 깼다. 이 세상을 창조하고 싶은 열망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노래했다. ‘이 세상이 생겨날지어다!’ 그리하여 마침내 세상이 창조되었다.” 여기서도 말이 세상을 창조한다. 창조의 소리, 그것이 곧 로고스다. 로고스는 인간과 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세계 사이를 이어주는 교량이자 전령사다. 하여, 문명의 탄생 이래 인간은 천지의 모든 것을 알고자 했다. 빅뱅에서 별의 탄생, 지구의 심층, 세포와 DNA, 사회구성체와 역사적 변동에 이르기까지. 왜? 그래야 자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저 별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고, 다시 그 별에 대한 앎이 생명과 존재의 비밀을 풀게 해준다. 하여, 모든 점성술은 천문학이자 운명론이다. 음양오행의 상생과 상극, 그 생극의 파노라마를 통해 운명의 지도를 그리는 사주명리학 역시 같은 패러다임에 속한다. 우주는 빅뱅 이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다시 말해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쯤 전에, 처음으로 자신에 대해, 또 자기를 낳고 거두는 이 세계의 모든 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하여, 로고스적 충동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이자 의지에 속한다. 문명은 이 로고스의 해방을 향해 달려왔다고 해도 무방하다. 신화를 전승하고, 문자를 발명하고, 책을 보급하고, 학교를 만들고…. 좀 더 많은 앎을 좀 더 많은 인간들이 누릴 수 있도록! 20세기를 장식한 모든 혁명의 비전 역시 궁극적으로 이 구호의 틀을 넘지 못한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폰이 우리 앞에 도래하였다. 스마트폰은 앎의 모든 장벽을 해체한, 그야말로 로고스적 의지로 충만한 기술이다. 하지만 아주 역설적으로 현대인들은 그 혁신의 동력을 망각해버렸다. 별을 보지도, 길을 묻지도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에로스에 올인한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고 성적 열기를 느낄 때만이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 또한 인간적인 속성이 아니냐고 묻겠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에로스적 충동은 인간만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모든 동·식물도 다 공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들과 달리 인간의 에로스에는 고매한 가치가 담겨 있노라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이를테면 쾌락을 전제하지 않는 사랑, 타자와의 깊은 공감, 화폐 법칙을 벗어나는 증여와 헌신 등등…. 맞다. 헌데, 그게 바로 로고스다. 앎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없는 한, 사랑과 윤리가 오버랩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때 사랑이란 화폐보다 더 지독한 소유의 게임이 돼버린다. 로고스가 배제된 에로스,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허망한지는 우리 시대 멜로가 잘 보여준다. 멜로가 그리는 사랑은 일종의 상품이다. 특히 여성들의 욕구를 최대한 충족시켜주는! 남자 주인공들의 신분이 계속 상승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재벌 2세·3세에서 왕·황제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마침내 외계인까지 강림해주셨다. 2014년 한국과 중국을 강타한 멜로 ‘별에서 온 그대’가 그 주인공이다. 어느 날 지구에 불시착한 이 남자는 400살이나 먹었음에도 무지막지한 동안에 꽃미남이다. 늙음에 대한 경멸과 불멸에의 갈망을 한눈에 집약한 캐릭터다. 거기다 초능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순간이동과 괴력을 발휘하여 수시로 연인을 지켜준다. 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지만 일단 이 정도는 용서하기로 하자.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일단 이 남성에겐 네트워크가 없다. 시월드는 물론이고, 동업자도, 친구도 없다. 이쯤 되면 외계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강남스타일 아닌가. 그래서인지 40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아직 사춘기의 첫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퇴행의 극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새로운 삶, 낯선 세계와의 접속을 의미한다. 그때 로고스적 본성이 요동치면서 아주 색다른 삶이 창조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퇴행적인 외계인을 소유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둘 다 ‘우주적 왕따’가 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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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강일구 |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참고 본 건 대체 ‘어느 별에서 왔을까’가 궁금해서였다. 비록 상상의 산물일지언정 하나의 별이 설정되면 그 별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쏟아지리라고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끝까지 그 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맙소사! 그냥 익명의 ‘별’에서 왔다니, 이게 말이 되나? 요즘처럼 천문학이 만개한 시대에. 더 어이없는 건 여주인공의 반응이다. 외계인이라는 걸 알게 되자, 처음엔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를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거기까진 좋다. 그 다음엔 당연히 물어야 하지 않는가? 그를 낳고 길러준 별에 대하여. 그곳의 자연과 환경·살림살이 등에 대하여. 하지만 여주인공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던 거다. 오직 그가 언제부터 자신을 사랑했는지, 또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인지 따위만 알고 싶어 했다. 솔직히 이건 여성에 대한 모독이다. 여성들은 지적 호기심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지성은 에로스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는 건가? 그래서인지 다른 멜로들에는 그래도 한동안 회자되는 대사가 있었건만, 이 작품은 한중 양국에서 빅히트를 쳤음에도 그럴싸한 대사 하나 탄생시키지 못했다. 주인공들의 미모와 현란한 이미지, 그리고 ‘치맥’이 전부란다. 그야말로 로고스적 결핍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셈이다. 별과 ‘그대’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대를 사랑하면 별에 대해서도 알고자 하는 법. 그게 아니라면 그녀는 자신과 이 지구에 대해서도 궁금하지 않다는 뜻인데,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위태롭다! 자신에 대한 탐구 없이 타자를 받아들인다는 건 결국 맹목과 충동으로 화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과연 그랬다. 외계인이 별로 돌아간 이후 그녀는 거의 파탄 상태에 빠진다. 울부짖고 부수고 미쳐버리고. 사람들은 이것을 진정성이라 간주한다. 하지만 그거야말로 착각이다. 일상을 내팽개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지는 이가 대체 누구를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것은 중독이지 진정성이 아니다. 사랑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번뇌의 카오스 속에서 리듬을 부여할 수 있는 힘, 그것이 곧 로고스적 충동이다. 그때 비로소 질문이 시작된다. 이 사랑의 원천은? 이 괴로움과 광기의 이유는?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근거는?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진리에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인류는 이 로고스의 해방을 향해 달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스마트폰을 통해 그 뜻을 이루었다. 스마트폰 안에는 인류가 도달한 최고의 지적 성취가 다 들어 있다. 먼 곳을 가지 않아도, 장서각을 뒤지지 않아도 손 안에서 다 접속가능하다. 그렇다면 이제 모든 이들이 별을 보고 길을 찾는 여행을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스스로 운명의 길을 열어가야 하지 않을까? 오래 전 인류가 그랬던 것처럼. 별은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한다. 살아 있을 땐 세상에 빛을 선사하고 죽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이 우주에 환원한다. 대표적인 예로, 초신성의 폭발이 이 지구를 만들고 생명체를 만들었다. 그 폭발과 증여가 없었다면 이 지구도, 우리도 없다. 고로 우리는 모두 별의 후예다. 당연히 우리들 존재의 심층에도 ‘증여 본능’이 꿈틀거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비롯하여 모든 영적 멘토들이 청빈과 비움, 또 나눔을 강조하는 이치 또한 거기에 있으리라. 또 별은 홀로 빛나지 않는다. 누군가 보내는 빛을 반사해야만 빛을 발할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반사하고 그 반사체들끼리 서로를 비추는 우주적 네트워크, 이것이 인드라망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길 또한 그러하리라. 생로병사란 결국 인연의 그물망 속을 헤쳐가는 것임을. 공자의 인(仁), 부처의 자비, 노자의 도(道)가 탄생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그러니 ‘별에서 온 그대’를 기다리지 말고, 감히 알려고 하라! 아니 별이 선사하는 앎의 향연을 만끽하라! 그때 비로소 지금껏 한번도 체험해보지 못한 삶의 길이 열릴 것이니. 고로, 로고스는 운명이다! 고미숙 40대 이후 지식인 공동체 활동을 해왔고, 현재는 남산강학원&감이당에서 ‘공부와 밥과 우정’을 동시에 해결하고 있다. 저서로는 『열하일기 3종세트』 『달인 3종세트』 『 동의보감 3종세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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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아산정책연구원 공동기획] 30만 넘던 가양주 기능인, 일제 때 10여 명으로 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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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정여창고택 옆 솔송주 문화원이 자리한 경남 함양의 개평마을엔 가는 비가 내려앉고 있었다. 찹쌀에 솔잎, 봄에 나는 솔순으로 빚은 솔송주의 단아한 향이 비가 만든 습기에 섞여 조용한 한옥마을을 감싸 안았다. 경남 무형문화재 박흥선 명인이 문화원 마루에 단촐한 술상을 차렸다. 단번에 삼키기엔 아쉬운 향이 대청마루를 가득 채웠다. 김춘식 기자 | 요즘 대학생들은 ‘막사’를 마신다. 막걸리에 사이다를 넣어 맛을 달달하게 한 것이다. 다음날 뒷골이 당긴다. 술이 덜 숙성돼 그렇다. 전통술의 대명사, 막걸리의 현실이다. 그럼 우리 전통술은 어땠을까. 당연히 달랐다. 그러나 우리 술의 근대사는 뒤틀린 운명을 강요했고 지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전통술은 고장의 좋은 물과 누룩, 쌀로 빚었기 때문에 맛과 향이 좋고 웬만큼 마셔도 몸이 개운했다. 그래서 적당히 마시면 건강에 좋고 국산 원료를 사용하여 안전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박록담 소장이 전하는 집안 일화가 재밌다. “조부모님은 점심·저녁에 한 대접씩 술을 마셨다. 매일 즐겼어도 85세까지 건강히 사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술을 드신 다음 날 꼭 힘들어했다. 40대부턴 고혈압·당뇨 같은 걸 앓으셨다. 하지만 술 잘 빚는 동네 할머니의 술을 드시면 다음 날 가볍고 좋다 하셨다.” 우리 술의 기본은 물·누룩·쌀이었다. 박 소장은 “우리 술에 관한 책은 80권 가까이 되는데 다 주원료는 쌀로 기록한다. 이게 수수로 빚은 중국, 멥쌀로 빚은 일본과 다른 점이다. 주곡으로 술을 빚는 것은 우리밖에 없었다”고 했다. 주곡인 기장·조·쌀 같은 곡식과 누룩으로 빚는 한국의 문화는 삼국시대에 이미 형성돼 있었다. 고구려 여인의 사연이 얽힌 ‘곡아주(穀蛾酒)’ 전설(『태평어람』), 멥쌀로 빚은 ‘신라주’(『해동역사』), 주국(酒麴)과 맥아(엿기름)를 이용한 백제의 감주 발효법(『주서』)은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백제인 인번(仁番)이 일본에 전한 술은 오진(應神) 일왕(270∼310)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일본인은 그를 ‘주신(酒神)’으로 모셨다(『고사기』). 고려 때는 술이 만개했다. 국산으론 청주·법주(왕의 술)·탁주(민간)가 주류였고, 여기에 조구이화주·오가피주·녹파주·국화주·창포주·황금주·백자주·죽엽주 같은 다양한 술도 곁들였다. 행인자법주·계향어주·마유주·백주·포도주 같은 외래주도 있었고, 몽골족의 원(元)의 지배는 증류식 소주 제조법을 퍼트렸다. 원의 일본 정벌 전초기지인 개성·안동·제주도는 소주의 명산지가 됐다. 조선은 술 문화를 숙성시켰다.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이 가이드였다. 관혼상제와 사랑채에서의 손님맞이에 술은 빠질 수 없었다. 술 문화는 세련되고 양조기법도 고급화됐다. 쌀 곡주만 850여 종이나 된다(박록담, 『역사의 부침과 함께해온 전통주』). 조선 후기에는 지방주가 발달했다. 서울의 약산춘, 전라도 여산의 호산춘, 충주의 노산춘 등 춘주류(春酒類), 평안의 벽향주, 김제 충주의 청명주, 제주의 초정주, 한산의 소국주 등이 유명했다(장지현, 『우리나라 전통주의 역사』). 서울을 중심으로 근교에선 약주, 이남에선 탁주, 이북에선 소주가 주로 소비됐다(조재선, ‘한국발효식품연구’). 전통술은 일제 강점기 때 몰락했다. 일제는 1909년에 식민지 재정 확보를 위해 ‘주세 부과’와 ‘주조 면허제’를 골자로 하는 주세법을 시행했다. 1916년엔 세율을 인상했다. 그리하여 전체 조세액에서 주세의 비중이 1910년 1.8%였다가 1934년에는 29.5%로 지세(26.3%)를 제치고 1위가 됐다. 또 한국식 주조장과 ‘일본식 개량 누룩’ 제조장을 통합시켰다. 그 과정에서 1916년 30만 명이 넘던 가양주(집에서 담는 술) 주조자가 1930년께 10여 명으로 격감했다. 1934년에는 가양주 면허제도를 폐지했다. 수천 종 향토주와 증류식 소주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그 자리를 일본 청주·맥주, 일제가 도입한 저급·저가 주정의 소주, 일반 민중이 몰래 만든 탁주가 대신 들어섰다. 오늘날 우리가 대중적으로 마시고 있는 희석식 소주와 값싼 막걸리는 일제의 ‘저가품주의’ 정책으로 만든 슬픈 술이다(이승연, ‘1905~30년대 초 일제의 주조업 정책과 조선 주조업의 전개’). 해방 후에도 전통술의 시련은 계속됐다. 일제 때 주세법은 여전히 사용됐고, 식량난으로 1960년대에는 탁·약주 제조에 쌀 사용을 금했다. 잡곡에 밀가루·옥수수·당밀 등을 섞어 빚게 했다. 가양주도 못 만들게 했다. 공장에서 술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와 사람들을 취하게 했다. 전통술은 설 자리가 없었다. 경복궁 막걸리학교 허시명 교장은 “전통술은 궤멸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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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조가 노영희씨가 자연의 단맛을 재현한 자희향의 양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춘식 기자 | 88올림픽은 숨통을 조금 열어줬다. ‘관광토속주’와 ‘민속주 기능보유자’가 처음 지정돼 민속주 50여 종이 재현되고 개발·보급이 시작됐다. 업체도 2001년 민속주 46개, 농민주 81개 등 129개에서 2010년 현재 민속주 57개, 농민주 412개 등 총 469개로 늘었다. 주류 규제완화도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1990년 주류도매면허 개방·쌀막걸리 제조 허용이 시작돼 1998~2000년 막걸리 신규 면허제한 폐지, 주류 제조 시설기준 완화, 주조사 의무고용제 폐지, 주류 판매업 면허요건 완화, 민속주 및 농민주 통신판매 허용으로 이어졌다(이동필, ‘한국의 주류제도와 전통주 산업’). 그렇지만 전통술은 여전히 허덕이고 맥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음 3인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지난 20일 찾은 경남 함양 개평마을 명가원.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 때부터 담기 시작했다는 솔송주의 고장이다. 일제 때 맥이 끊기지 않은 몇 안 되는 곳 중 하나다. 가양주로만 전해지다 16대손 정천상 회장과 박흥선 명인이 1996년 주조 허가를 받으면서 대량 생산에 성공했지만 명인은 뜻밖에 “너무 힘들다”고 한다. “주위에서 시어머님께 맛있는 술을 많이 담가보라고 한 게 고생의 시작이었다. 항아리에 조금씩 하던 것을 크게 하니 고른 품질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작은 항아리는 온도 조절도 됐지만 대량으로 하니 곧잘 쉬어버렸다. 저온에 발효하면 부드럽고 깊은 맛이 나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판로 확보도 골치가 아팠다”고 했다. 누룩내도 문제였다. 젊은이와 외국인이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탁주는 할수록 손해여서 중단했고 전통술만으론 안 돼 복분자주 개발에도 뛰어들었다. 7년 적자 끝에 겨우 숨을 돌리고 지금 10년째 맥을 이어간다. 우연한 기회에 마신 막걸리에 매료돼 전통술에 뛰어들었다는 노영희 대표도 허덕인다. 지난 20일 그의 회사가 있는 전남 함평을 찾았다. 이 회사에서 만든 자희향은 국향대전에서 인정받아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만찬주로 지정됐다. “국향대전은 격과 작품성이 있는 축제여서 품격 있는 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술을 잘 빚는 지역 종가를 다니며 술을 다 맛을 봤지만 다들 유원지 동동주 맛이었다”며 “전통주 제조 과정이 전혀 매뉴얼화돼 있지 않았다. 얼마나 몇 도에서 숙성시킬지도 없고, …저온 저장시설이라고 찾아보니 와인용이었다”고 했다. 국세청 기술연구소에서 6개월간 교육까지 받았다. 그래도 그 레시피대로 하면 시중 막걸리가 나올 뿐이었다. 실패했던 술이 몇 백 항아리인지 모른다. 그렇게 5년 고생 끝에 겨우 성공했다. 술 빚는 법을 찾아 13년간 전국을 다녔다는 박록담 소장의 설명이다. “맥주·와인·막걸리 전문가는 많아도 우리 술을 가르쳐 줄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술 산업이 일본 술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막걸리 연구자도 마찬가지다. 누룩으로 빚는 시골 술을 전공한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니 독학해야 하는데 와인·맥주로 공부를 하면 기본적 주조 과정은 꿴다 해도 우리 누룩 공부는 여전히 안 된다. 일본에는 미생물을 비롯해서 모든 정보가 다 정리되어 있어 이를 베껴다 만든 걸 우리 술로 알고 마시고 그 다음 날 숙취에 시달려 온 것이다. 시중의 막걸리·동동주·희석식 소주의 95%가 일본식으로 주조한다.” 전통주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경남무형문화재와 대한민국식품명인 보유자인 박흥선 명인은 “지금 한국 술은 아사 직전”이라고 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2011년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자금 부족 20.5%, 판매 부진 18.5%, 시설 낙후 15.3%, 노동력 부족 및 인건비 부담 14.3%의 순으로 경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답했다. 또 한국인의 36.4%가 술을 주 1~2회, 32.9%가 월 1~2회 마신다. 희석식 소주(39.4%)와 맥주(35.7%)가 1, 2위이고 3위는 막걸리지만 13.9%에 불과하다. 수입 와인(3.2%)·양주(1.8%) 소비도 전보다 줄었다지만 국산 과실주(4.9%), 약주·청주(0.6%), 증류식 소주(0.4%)는 거의 안 마신다. 다만 가능성이 닫힌 것은 아니다. 연구원의 응답자 가운데 94.5%가 “전통술을 마셔봤다”고 했고 68.1%가 “만족한다”고 했다. 뭔가를 잘만 하면 멀어진 소비자를 돌아서게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프랑스 에섹(ESSEC) 경영대학원의 데니스 모리셋 교수는 “명품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희소성과 사람을 꿈꾸게 하는 힘이다. 역사와 문화도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했다. 청와대나 대사관·기업 등의 만찬주로 와인만 마실 게 아니라 전통주를 더 폭넓게 활용하는 것도 좋다. 우리 술에 왜 명주가 없느냐고 탓하는 것은 섣부르다. 우리 술에도 수백 년의 맛과 전통을 이어온 중국의 마오타이주, 일본의 사케, 영국의 위스키, 프랑스의 와인·코냑과 비교해 손색이 없는 것이 물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브랜드화할 건가는 끊임없는 품질향상 노력과 국민의 관심, 그리고 국가의 의지에 달려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술이 지역축제·관광·예술 등과 결합한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취재지원=권희연 아산정책연구원 인턴, 신희선ㆍ오수린ㆍ이서영ㆍ이영경ㆍ홍예지 아산서원 알럼나이 소모임 이승률 아산정책연구원 인문연구센터 연구위원 sungryul1@asaninst.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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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증시는 거품, 올가을 주가 추락에 대비하라
조짐이 심상찮다. 글로벌 주가가 높이 날고 있는 와중에 경제와 투자 구루(Guru)들이 경종을 울리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와 ‘헤지펀드 귀재’인 조지 소로스 소로스펀드 회장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두 사람 모두 2008년 금융위기 등을 미리 경고한 적이 있다. 위기를 감지하는 촉이 남다르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원조 ‘닥터둠’ 마크 파버 글룸붐앤드둠(Gloom, Boom & Doom) 편집자 겸 발행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궁금증을 안고 20일 태국에 머물고 있는 파버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 2000년 닷컴거품 붕괴, 2007년 미국 주택시장 위기 등을 정확하게 예견했다. 위기를 감지하는 촉이라면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다. -요즘 시장 상황이 위태위태한가. “미국 등 선진국 시장은 그렇다. 요즘 미국 주가는 주당순이익이나 장부가 등 여러 지표에 비춰 너무 비싸다. 유명한 펀드매니저 벤저민 그랜섬은 늘 낙관적인데 최근 기대 수익을 크게 낮췄다.” 그랜섬은 영국 출신 장기 투자자다. 미국 보스턴에 있는 자산운용사 GMO의 설립자다. 그가 직간접적으로 운용하는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1120억 달러(약 114조원)에 이른다. -소로스는 아예 미 주가 하락에 베팅했다고 하더라. “소로스 경우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그의 자산은 200억 달러 정도다. 이 가운데 20억 달러를 공매도했다. 주가가 떨어지면 싸게 사서 건네주고 차액을 수익으로 챙기는 전략이다. 물론 공매도 규모가 이전보다 늘기는 했지만 일반적인 리스크 헤지라고 봐야 한다.” -실러 교수는 주가뿐 아니라 채권 등의 값도 너무 뛰었다고 지난주 경고했다. “그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의 말에 동의한다. 선진국 자산 가격이 인플레이션돼 있다고 판단한다. 실러 교수가 개발한 지표를 봐라. 진실을 보여준다.” 그 지표는 바로 실러 교수가 개발한 ‘경기조정주가수익비율(CAPE·Cyclically-Adjusted Price Earnings Ratio)’이다. 물가를 반영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와 주당 순이익 10년 평균값으로 산출한 주가수익비율이다. 올 8월 20일 현재 26.28이다. 1987년 10월 블랙먼데이 때보다 높다. 2008년 금융위기 직전과 엇비슷하다. 실러는 “CAPE가 주식 매매 타이밍을 보여주진 않지만 현재 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알 수 있도록 해준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CNBC 등과 인터뷰에서 올가을께 미 주가가 20~30% 떨어질 것으로 경고했다. 그 생각엔 변함이 없는가. “뉴욕증시의 S&P 500 지수가 2009년 3월 670선까지 떨어진 뒤 계속 올라 1900선을 웃돌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기업 실적이나 거시경제 상황에 비춰 이는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이다. 내가 보기에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자산가격 버블이라고 해도 될까. “그렇다. 주요 나라 주식뿐 아니라 채권이나 집값 모두 너무 비싸다. 우리 눈앞엔 값이 너무 오른 글로벌 자산시장이 있다.” -주가가 급락한다면 무엇이 촉발시킬 것으로 보는가. “현재로선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지정학적 갈등일 수도 있고 어떤 나라의 정치적인 사건이 주가 추락을 야기할 수도 있다. 자연재해도 방아쇠가 될 수 있다.” 실제 87년 10월 블랙먼데이는 아주 우연한 사건에 의해 촉발됐다. 그해 10월 10일 미국과 이란 군함이 전투를 벌였다. 닷새 뒤인 15일엔 허리케인이 영국 런던을 엄습했다. 런던증권거래소 매매가 중단됐다. 그리고 나흘 뒤인 19일 주가가 폭락했다 -경제적인 변수를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 “내가 보기엔 신용시장, 즉 채권과 자금 시장이 화근일 듯하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다.” -대기업이 부도를 낸다는 말인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요즘 국채 값이 너무 올랐다. 독일의 채권값을 봐라. 현재 10년 만기 국채의 만기 수익률이 1%도 되지 않는다. 스위스 국채 10년짜리 수익률도 마찬가지다. 일본과 프랑스 국채 모두 고공 행진이다.” -채권값이 떨어지는 게 방아쇠란 말인가. “채권값이 떨어지면 만기 수익률(시장 금리)이 오르지 않는가. 그러면 글로벌 자산가격 조정이 불가피하다. 현재 주가는 아주 낮은 시장 금리를 전제로 형성된 것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바탕 위에 높은 주가가 형성돼 있다. 금리가 오르면 주가가 떨어질 것이다.” -또 다른 방아쇠는 없을까. “방아쇠라기보다는 증폭기에 가까운 존재들이 시장에 있다. 모멘텀 플레이어들과 고주파 트레이더(HFT)들이다. 이들은 주가 흐름이 바뀌는 시점을 노려 엄청난 물량을 사고파는 무리다. 주가가 일단 떨어지기 시작하면 이들이 떨어지는 폭을 순식간에 키울 수 있다.” 파버는 거시경제 전문가는 아니다. 그가 경제학 박사이기는 하지만 자산시장에 거의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그에게 미국 통화정책은 어떻게 비칠지 궁금했다. -재닛 옐런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철학이나 비전을 어떻게 보는가. “옐런만을 두고 말할 필요가 없다. 서방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은 모두 비둘기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기준금리를 너무나 긴 기간 동안 아주 낮게 유지하고 있다. 내년에 금리를 올린다고 해도 시늉만 낼 것이다.” -무슨 말인가. “미국 Fed가 1913년 설립됐다. 이후 100년 동안 기준금리는 평균 4% 안팎이었다. 지금은 0%다. Fed가 예고한 것보다 서둘러 금리를 올린다고 하자. 몇 %포인트나 올릴 것 같은가?” -0.25~0.5%포인트 정도이지 않을까. “그 정도 올려도 기준금리는 1%도 되지 않는다. 무슨 효과가 있을까. 그 정도 올려봐야 의미 없다고 본다.” -정책 방향이 바뀌었다는 신호를 시장에 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지 않을까. “그 의미가 주는 파장은 오래가지 못한다. 시장은 인상 초기 긴장하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금리 인상폭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재기 시작한다. 결국 기준금리가 2% 이상을 넘어설 때까지 자산 가격이나 실물경제에 큰 일이 없다는 것을 간파할 것이다.” -어쨌든 옐런이 기준금리를 예정보다 빨리 인상한다는 말인가. “내가 보는 올 하반기 글로벌 경제는 일반적인 예측과 정반대다. 그들은 대부분 올 하반기 글로벌 경제가 좋을 것이라고 본다. 난 아니다. 올 하반기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것으로 본다. 실제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면 옐런은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금리 인상을 어렵게 할 또 다른 요인도 있다.” -무엇인가. “미국 주가가 앞으로 6개월 사이에 10% 정도 떨어진다면 옐런은 금리 인상을 꺼릴 수밖에 없다.” 다시 중국 경제가 화두다. 집값이 중국 전역에서 떨어지고 있다. 건설과 부동산 부문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다. 기업의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과 거의 비슷하다. 이런 주택시장이 침체에 빠지면 중국은 핵심적인 성장 엔진 하나를 잃게 되는 셈이다. -요즘 중국 주택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있다고 보는가. “주택시장은 약해지고 있다. 실물경제도 심상치 않다. 중국 내 자동차 판매가 둔화하고 있다. 마카오 카지노 수입도 줄고 있다. 그런데도 중국 경제가 나쁘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있는데 나는 그들의 분석 능력을 의심한다.” -주택시장이 계속 약해져 위기의 도화선이 될까. 2007년 미국 주택시장처럼 말이다. “주택시장보다 중국의 신용거품(부채 급증)이 더 큰 문제다. 2009년 이후 중국 빚이 100% 늘어났다. 이렇게 단기적으로 급격히 불어난 빚 더미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많은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돈을 찍어내거나 재정을 풀어 부채 위기가 오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 “(껄껄 웃으며) 북한이나 군사정부 시절 남한 정부라면 가능할 것이다. 중국 경제는 아주 빠르게 시장화돼 있다. 중국 정부의 통제 능력 밖에 있다. 더욱이 인구가 13억 명이나 된다. 싱가포르 같은 나라처럼 할 순 없다.” -그렇다면 중국 위기가 온다는 말인가. “곧 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꽤 된다. 다만 다가오는 위기가 97년 아시아 금융위기처럼 메이저급일지 아니면 소규모일지는 모르겠다.” -한국이 중국의 이웃이라서 위기가 걱정된다. “한국이나 대만이 중국 시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중국 경제의 성장률이 높지 않으면 한국이 시원찮을 것이다.” -중국 주가는 어떨까. “중국 주가는 실물경제와 좀 다른 흐름이 될 수도 있다. 주가가 2007년 10월 정점에서 떨어졌다. 다른 나라 주가와 견줘 싼 편이다. 위기가 발생한다고 해도 주가가 폭락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주가 급락이나 중국 위기 같은 폭풍을 피할 만한 투자 대상은 무엇일까. “요즘 금값이 상대적으로 낮다. 주가가 추락할 때 금값이 덜 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가오는 주가 조정은 주로 선진시장에서 일어날 것이다. 신흥시장 주식을 사면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다.” 마크 파버=1946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나 취리히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80년대 정크본드 파문을 일으킨 투자은행 드럭셀번햄램버트의 트레이더와 아시아 담당 전무이사를 지냈다. 90년에 독립해 투자자문사인 마크파버리미티드를 설립해 최근까지 운영했다. 요즘엔 투자 레터인 ‘글룸붐앤드둠(Gloom, Boom and Doom)’ 발행에 집중하고 있다. 97년 아시아 금융위기 등을 정확하게 예측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2008년 위기를 예측해 명성을 얻기 전까지 파버가 ‘닥터둠’으로 불렸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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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동조단식 2만 명 넘어”
세월호 희생자인 유민양의 아버지 김영오(47)씨를 따라 동조단식을 하겠다고 나선 인원이 2만 명을 넘어섰다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 대책위원회가 밝혔다. 여기에는 자신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단식을 알린 이들과 서울 광화문광장 바닥에 함께 주저앉아 하루 이상 단식 농성을 한 일반 시민 3000명도 포함된다. 김씨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22일 당일에 온라인상에서 단식을 알려온 인원이 1만9000명에 달했다. 참가자들은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배고픔을 함께하겠다”며 동조단식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동조단식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유가족이 요구하는 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세월호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23일에는 장애인과 빈민 100명도 일일단식을 했다. 25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수도사들이 단식기도회를 연다. 광화문에 비치된 단식 참가신청서에는 자신을 일반 시민이라고 밝힌 이들의 서명도 줄을 이었다.
세월호 대책위 관계자는 “김영오씨는 현재 병원에 입원해서도 41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며 “비타민과 무기질 등이 든 수액을 맞고 혈압은 안정됐지만 여전히 식사를 거부하고 있어서 정신적·체력적으로 매우 불안정하다”고 밝혔다.
▶관계기사 6p
유재연 기자 queen@joongang.co.kr
청와대·여·야 네 탓 공방 … ‘유민 아빠’ 불상사 땐 핵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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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오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열린 2014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모두 발언을 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고 있다. [뉴시스] | 마치 폭탄 돌리기를 연상시킨다. 서로들 “당신이 해결하라”며 떠넘기기 급급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일찌감치 조정 능력을 상실했고, 새누리당은 여론과 권력 사이에 낀 채 주저하고 있다. 청와대는 뒷짐 진 상태다.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해법의 열쇠를 쥐고 있는 당사자들 역시 답답해 한다. 운신의 폭은 넓지 않다. 상황을 질질 끌다 결국엔 유가족과 청와대만 남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적지 않다. 마주 보고 달리는 폭주기관차처럼 양쪽 다 치명상을 입을 수 있는 ‘치킨게임(chicken game)’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과연 브레이크는 없는 걸까. 새누리 연찬회서 대응 방식 논쟁 23일 오전 충남 천안시 우정공무원교육원에서 새누리당 의원 연찬회가 이틀째 진행됐다. 의원 20여 명이 단상에 올라갔고, 방탄국회·공천방식·경제활성화 등 다양한 현안이 논의됐지만 핵심은 ‘세월호’였다. 강경론이 여전히 강했다. 안덕수(인천 서-강화을) 의원은 “(세월호 해결 방법은)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야당이 과잉을 해 (유가족이) 너무 큰 기대를 갖게 됐다”고 진단했다. 이노근(서울 노원갑) 의원은 “수사권·기소권을 달라니 기가 막힌다. 양보라는 아름다운 용어로 포장하지 마라. 응급상황을 넘기기 위해 대한민국 정통성과 헌법적 가치를 무너뜨려선 안 된다”고 했다. 김상훈(대구 서구) 의원은 더 나아가 “광우병 파동에 나섰던 세력이 세월호 유족과 함께 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다. 심히 우려스럽다. 여야 협상이 결렬될 때마다 대통령이 나설 수 없지 않은가”고 반문했다. 홍문표(충남 홍성-예산) 의원도 “원칙과 온정의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국가를 책임진 집권 여당은 어렵고 고통스러워도 원칙을 저버려선 안 된다”고 했다. 하지만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의원도 적지 않았다. 정미경(경기 수원을) 의원은 “만약에 내가 (세월호) 엄마라도 자식 잃고 살 수 없을 것 같다. 평생 원망이 가슴에 맺혀 있을 거다. 가슴속 그 한풀이를 해줘야 하지 않겠나”고 호소했다. 황영철(강원 홍천-횡성) 의원도 “우리가 진정 유가족에게 따뜻했는가 돌아봐야 한다”고 했고, 정병국(경기 여주-양평-가평) 의원은 “대통령이 김영오씨 병실을 찾아가야 한다. 이제 야당에 맡길 게 아니라 우리가 직접 유가족과 협상해야 한다. 기소권·수사권을 주느냐 마느냐보다 더 선행되어야 할 건 신뢰를 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찬회 막판 김무성 대표가 “유가족을 만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일각에선 ‘김무성 역할론’을 제기하고 있다. 여야 협상이 사실상 무의미해진 상태에서 김 대표가 유가족과 청와대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에겐 ‘해결사’ 정치인으로 각인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하지만 김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은 여당 대표 아닌가. 지난해(철도 파업 때)와는 위상이 다르다. 섣불리 움직일 수 없다. 유가족을 만나겠다는 건 원론적인 입장일 뿐”이라고 전했다. 박영선 비대위 체제 25일 의총이 분수령 새정치연합 당내 기류도 요동치고 있다. 소속 의원 22명이 22일 “여·야·유가족이 참여하는 3자협의체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우원식·이인영·정청래·최민희 의원 등이 참여했다. 지난 7일 여야 간 1차 협상 이후 46명 의원이 냈던 협상 반대 성명에 비해선 수적으로나, 내용적으로 수위는 약해졌지만 “기존 협상안을 인정할 수 없다”는 건 같다. 재협상안 합의 이후 “유족을 설득하자” “새누리당이 나서라” 등과는 분명 다른 목소리다. 일찌감치 박영선 국민공감혁신위원장(비대위원장)은 “재재협상은 없다”고 단언했기에, 이번 성명은 사실상 박영선 체제 비토(거부)라는 해석이다. 때마침 박지원·박병석·유인태 의원 등 당내 중진 8인은 22일 회의를 하고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의 분리안에 공감을 표했다고 한다. “박 위원장에 대한 문책성은 결코 아니다”고는 하나 결과적으로 박영선 체제의 힘을 빼는 꼴이다. 구심력을 잃은 당내 목소리가 다양하게 표출되고 있다. 비주류계 황주홍 의원은 “세월호특별법에 꽁꽁 묶여 있을 순 없지 않은가”라고 했고, 한정애 대변인은 “민생 법안과 세월호특별법을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7·30 재·보선 참패 이후 내년 전당대회까지 잠복할 것으로 예측되던 당내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결이 세월호특별법 파동으로 인해 예상보다 빨리 부상했다는 분석이다. 25일 의원총회가 박영선 체제 지속 여부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편 문재인 의원은 23일 단식을 이어갔다. 41일째 단식 중인 ‘유민 아빠’ 김영오(47)씨의 병실에도 갔다. 그는 “단식을 언제까지 하느냐”는 질문에 “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유민 아버지가 (단식을) 중단하는 게 중요한데 아직은 음식을 들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세월호 참사는 정치권 공동의 책임인데, 문 의원은 혼자 단식을 지속하며 책임에서 빠져나가려 한다. 정말 야비하다”고 적었다. 대처도 IRA 대원 단식 사망으로 휘청 세월호 희생자 가족대책위는 22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철야농성을 벌였다. 청와대는 “면담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최근 리얼미터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야의 재협상안대로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45.8%, 유가족 뜻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38.2%였다. 박근혜 정부 책임론만큼 세월호 피로감이 있다는 뜻이며, 세월호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대한 반감이 적지 않다는 방증이다. 새누리당 고위 관계자는 “유가족이 단순히 대통령의 위로를 원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면담을 하면 그들이 원하는 기소권·수사권을 관철시키려 할 텐데, 그건 청와대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면 또 ‘대통령 만나봤자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공격할 거고, 만나는 게 능사는 아니다”고 했다. 그럼에도 현 정국의 키를 쥐고 있는 건 김영오씨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41일째 단식 중이다. 자칫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면 “딸 잃은 아비마저 죽게 만들었다”는 후폭풍이 몰아칠 건 분명하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영국에서 1981년 보비 샌즈라는 IRA 무장대원이 자신을 죄인 취급하지 말고 정치범 대우를 해 달라며 단식에 들어가 66일 만에 사망했다. 당시 대처 총리는 ‘테러리스트와 협상은 없다’는 원칙을 견지했음에도 정치적 타격에 휘청거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야권, 특히 재야세력은 이제 김씨를 구심점으로 삼고 있다. 그를 전면에 내세워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고 해도 생사의 문제를 이겨낼 수 있겠는가.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간 자칫 정권 차원의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불가피하게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고 전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여당 “의회 입법권 침해” … 유족 “수사·기소권 필수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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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의 희생자 가족들이 23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서 비닐을 덮은 채 노숙하고 있다. [뉴시스]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광화문광장 농성장에서 40일 동안 단식을 하던 ‘유민 아빠’ 김영오(47)씨가 지난 22일 병원으로 옮겨진 뒤 동조단식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을 향한 비난 수위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23일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에 따르면 24시간 동안 참여하는 동조단식단은 2만 명을 넘어섰다. 이날 장애인·빈민단체 회원 100명도 동조단식에 참여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동조단식에 참여하겠다는 게시글이 이어지고 있다.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아이스 버킷 챌린지’에서도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배우 이정현은 자신의 트위터에 아이스 버킷 동영상을 올리면서 “루게릭병 환자뿐 아니라 사회 소외계층,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지지도 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조단식이 늘어나면서 ‘정치적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도 생겼다. SNS에서는 ‘김영오씨가 민주노총 금속노조원 출신이라는 점에서 단식의 순수성에 의심이 간다’는 글이 유포되고 있다. 보수논객을 자처하는 변희재씨도 트위터에 “유민 아빠란 자의 신분이 금속노조원이라면 당연히 지금의 비정상적 투쟁이 대한민국 정부를 엎으려는 친노 정치세력의 정략이라 의심할 만한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자식을 잃은 아버지의 슬픔을 곡해하는 게 더 불순한 정치적 목적”이라며 비판한다. “청와대로 불러 진상규명 약속해놓고 …” 세월호특별법이 불신과 원칙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 모임인 ‘세월호 사고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는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을 믿지 못한다. 단순한 불신으로 보기엔 쌓인 감정의 골이 깊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월 가족 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 국정조사특별위원회나 세월호 사건조사 및 보상에 관한 조속입법 태스크포스(TF) 활동이 큰 성과 없이 마무리됐고,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의 ‘부적절한 발언’이 이어진 것도 불신의 벽을 높였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원장은 지난 7월 최고위원회의에서 “세월호 사고는 일종의 교통사고”라고 말했다. 안홍준 새누리당 의원은 이달 초 황우여 교육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단식을 제대로 하면 벌써 실려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해 가족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고수하고 있는 ‘원칙론’도 특별법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의 입법권 침해 논란이다. 민주주의의 대원칙인 삼권 분립하에서 법을 만드는 것은 헌법상 대의기관인 국회의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이 지난 20일 “세월호특별법은 여야가 합의해서 처리할 문제로 대통령이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행정부 수장인 대통령이 국회의 고유 권한을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22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세월호특별법은 법을 만드는 것이고 이것은 온전히 국회의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노골적으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입법권 원칙’은 새누리당뿐 아니라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도 율사 출신 의원들을 중심으로 팽배해 있다. 대책위가 특별법 TF 논의 과정에 가족들을 참여하게 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적극적으로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나친 원칙론의 고수가 불신의 벽을 높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대책위의 세월호특별법안에 참여했던 대한변협 박종운 변호사는 “피해자 가족들은 입법 과정에 자신들의 의견을 반영해 달라는 것이지, 국회의원의 입법 권한을 침해하거나 의결 과정에 참여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박 변호사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은 전문가들만 만드는 게 아니라 충분히 민의를 대변해야 한다”며 “일반법도 아니고 수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라면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버리고 피해자들을 치유하는 과정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법을 둘러싼 오해도 증폭되고 있다. 희생자 가족들이 특별법에 대해 특정한 원칙을 정해놓고 한 발도 물러서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는 것이 대표적이다. 예컨대 일부 언론에서 ‘대책위가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진상조사위 활동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보도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와 조금 다르다. 대책위 측은 여야가 세월호특별법에 1차 합의했던 이달 초 이후 “대책위의 특별법안에 ‘버금가는’ 대안을 정치권이 만들어달라”고 요구해 왔다. 입법TF에 대책위를 포함시켜 3자협의체를 구성해달라거나, 진상조사위 구성에 있어 국회 추천위원과 피해자 단체 추천위원을 동수로 해달라는 주장은 이미 철회한 상태다. 유족, “국회가 대안 내면 받아들일 것” 피해자 가족들은 왜 여야가 두 차례에 걸쳐 합의한 세월호특별법안에 반대하는 걸까. 그리고 이들이 요구하는 건 뭘까.
대책위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박주민 변호사는 23일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반드시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의 요구에 ‘버금가는’ 대안만 마련된다면 국회의 특별법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도 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한다는 건 물러설 수 없는 요구인가. “이미 3주 전(여야의 특별법 1차 합의 시점)부터 가족들은 ‘대책위 안에 버금가는’이란 표현을 썼다. 이는 세 가지 원칙만 충족되면 된다는 의미다. 우선 청와대는 물론 여야 정치권으로부터 독립적인 사람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져야 하고 두 번째는 권한이 발휘되는 기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권한을 가진 사람이 진상조사위 활동과 유기적으로 연계돼야 한다.” -그렇다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사람 혹은 기구가 조사위 바깥, 예를 들어 특별검사의 형태로 있어도 된다는 의미인가. “우리가 요구하는 원칙은 세월호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세 가지 구성요소만 갖춰진다면 다른 형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여야는 이미 상설특검을 통한 수사권과 기소권 행사에 합의했다. 여야가 특별검사 추천위원회 위원(7명)의 국회 몫 추천위원 4명 중 여당 추천위원 2명에 대해 야당과 유가족의 사전동의를 받기로 재합의하기도 했다. 이 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는 뭔가. “피해자 가족들이 특검을 직접 추천할 수 없다면 특검 추천위원 구성이라도 가족들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것이다. 여당 몫 2명의 추천위원은 어쨌든 추천 주체가 여당이다. 여당은 계속 자신들이 원하는 인사를 올리고 가족들이 계속 반대한다면 어쩔 건가. 여당 추천과 가족의 반대가 되풀이될 텐데.” -정부 여당에도 세월호 사고의 책임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특검 후보 추천 과정에서 여당을 죄인 취급하면서 무조건 배제하겠다는 것은 무리한 주장 아닌가. “여당은 피해자 가족들이 너무 못 믿는다고 얘기하는데 여당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면 이런 주장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새누리당이 보여준 행태가 어땠나. 세월호 사건이 교통사고와 뭐가 다르냐고 망언을 했고, 국정조사 증인 채택도 안 됐다. 여당이 가족들의 얘기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보인 적이 없는데 ‘우리가 미쳤다고 이상한 사람을 (특검 후보로) 추천하겠냐’며 무조건 믿으라고 하면 믿을 수 있겠나. 가족들 내부에선 여당이 처음부터 믿음을 줬다면 수사권기소권 문제에 있어 기존 상설특검을 그대로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그래도 입법 권한은 국회에 있는 것 아닌가. “가족들이 법을 만들게 해달라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 입법 과정에 간여하라는 것도 아니다. 우리 얘기를 들어달라는 거다. 청와대는 국회에 떠넘기고, 여당은 야당에 ‘가족들을 설득하라’고 떠넘긴다. 여당은 특별법에 대해 빨간펜 들고 이건 안 된다, 저것도 안 된다 하기밖에 더 했나. 여당과 청와대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건가.” 일각선 갈등 부추겨 … 국민들 피로감 세월호특별법이 장기간 표류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도 커지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세월호특별법 논란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 진영논리나 이념 갈등처럼 곡해되면서 국민들의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진보와 보수 양측의 일부 극단주의자들이 세월호특별법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갈등만 부추기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피해자 가족들도 이런 논란에 대해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김병권 대책위 대표는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정치적 논란에는 관심이 없는 평범한 국민들”이라며 “배후가 있다거나 무리한 배·보상을 요구한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을 보면 울화통이 치민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가족들은 하루도 쉬질 못했다. 특별법 문제를 하루라도 빨리 해결하고 싶은 건 오히려 우리 가족들”이라며 “많이 응원해주시고 함께 슬퍼해주신 국민들이 피로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선 안타깝지만 청와대와 정치권이 빨리 해결해주지 못해 논란이 길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시간을 끌 생각은 추호도 없다”고 말했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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