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 따라잡기 - 중국 깊이보기
오광진 중국전문기자·경제학 박사 kjoh@hankyung.com[ 오광진 기자 ]
中 투톱의 ‘新실크로드’ 행보
시진핑은 亞 세일즈 외교…"리커창, 아셈서 청사진 제시"
협의 중인 다자간 공동체 10건
유라시아 경제벨트에 숨은 뜻
30개국에 고속철 수출 추진…원유 수송 바닷길 장악도
자금줄 亞인프라투자은행 내달 설립 앞두고 美 견제
유럽을 순방 중인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오는 16~17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리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아셈·ASEM)에 참석한다. “중국의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 구상을 제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펑중핑 중국현대국제관계연구원 유럽연구소장)는 관측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9월 타지키스탄 몰디브 스리랑카 인도 순방은 ‘실크로드 로드쇼’(왕이 중국 외교부장)라는 평가를 받았다.
중국의 ‘투톱’이 지구촌 곳곳에 자국이 주도하는 경제공동체를 세우느라 바쁜 모습이다. 주변국과의 지역 경제권 구축을 서두르고 역내포괄적동반자협정(RCEP), 아태자유무역지대(FTAAP) 등 국제사회가 추진해온 다자간 경제협정의 조기 타결을 밀어붙이고 있다.
중국의 세계화 전략이 종전의 양자간 경제협력 강화에 머물지 않고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경제권 건설을 병행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바둑의 포석(布石) 전략으로 미국의 아시아 회귀를 통한 중국 포위에 대응하는 것이다. 중국 외교를 바둑에 비유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은 “바둑은 상대적인 우위 선점과 장기적인 포위과정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11월 APEC 베이징회의 FTA 논의중국이 심혈을 기울이는 새로운 경제권 건설의 테마는 ‘실크로드’다. 시 주석이 지난해 9월과 10월 중앙아시아 및 동남아 방문 때 제안한 육상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21세기 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위한 종합 청사진이 연내 발표될 예정이라고 중국 잡지 차이징이 최근 보도했다. 중국은 실크로드 건설 기반을 다지기 위한 주변국과의 경제권 구축도 추진 중이다. 시 주석은 지난 9월 몽골 러시아 등 3개국과 정상회담을 열고 경제도로를 건설하자고 제의했다. 같은 달 인도 방문 때는 방글라데시-중국-인도-미얀마 경제도로 건설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 역시 같은 달 베트남에선 중국과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간 FTA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첫 협상이 진행됐다. 리 총리가 지난해 9월 제안해 이뤄진 이 협상은 내년 타결이 목표다. 중국은 아세안과 한국 등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도 조기 타결을 추진 중이다. 리 총리는 작년 10월 타결 시점을 2015년으로 1년 앞당기자고 제안했다.
중국 외교부는 11월 베이징에서 열리는 아태경제협력체(APEC) 비공식 정상회의의 목표 중 하나가 21개 회원국 간 FTA인 FTAAP 협상의 정식 가동이라고 최근 밝혔다. 1994년 협의가 시작된 FTAAP는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주력하면서 흐지부지되다가 시 주석이 6월 방한 때 박근혜 대통령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등 불씨 살리기에 나섰다. 한·중·일 FTA 등 중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는 경제공동체가 10건에 이른다. 9월 말 현재 중국이 체결한 다자간 FTA는 중·아세안 FTA 한 건에 불과하다.
○미 주도 TPP에 맞대응“실크로드경제벨트 건설은 중국을 배제하는 미국 주도의 TPP에 대응하기 위한 것”(송궈유 푸단대 교수)이라는 분석이다. 동시다발적인 중국 주도 경제공동체 구축 배경엔 중국의 안전한 원유 수송로 확보와 낙후된 변경 지역과 산업구조 고도화 등도 있다.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비단을 주고 향신료를 들여오던 중국은 이제 위안화를 들고 나가 중국산 고속철도를 깔고 자원은 물론 첨단기술과 명품 브랜드를 들여온다는 전략이다. 신화통신은 이를 두고 선진 연구개발과 브랜드 마케팅 능력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미소곡선(smile curve)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넘치는 위안화가 든든한 실탄이다. 중국의 해외투자(ODI)는 “2017년 2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중신은행)으로 전망된다. 지난 8일 중국 국무원(중앙정부) 상무회의는 해외투자 규제를 사실상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위안화 로드’ 구축을 위한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중국이 최근 주창하는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동주공제(同舟共濟·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할 우군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새 세계화 전략에 장밋빛 전망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은 한국 호주 등 동맹국들에 AIIB에 참여하지 말라고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뉴욕타임스). 시 주석은 11월 APEC 베이징정상회의에서 한국 등을 AIIB 창립 파트너로 발표한다는 전략이다. 베트남 필리핀 등과의 남중국해 영해권 분쟁 및 인도와의 국경 분쟁도 암초가 될 수 있다.
■ 미소곡선smile curve. 대만의 컴퓨터업체 에이서 창업자인 스탠 시가 주창한 것으로, 중간 단계인 제조공정보다 처음과 마지막인 연구개발과 브랜드 마케팅 AS의 부가가치가 높다는 개념. 각 제조공정과 부가가치 수준을 축으로 해서 그래프를 그리면 미소를 짓는 것처럼 U자형이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
■ 韓·美·日·유럽 등 실크로드 각축전
자원 풍부한 중앙아시아 선점세계 외교무대에서도 실크로드 각축전이 한창이다. 2000년 전 한무제 때 시작된 육상 실크로드와 13세기에 가장 번성했던 해상 실크로드의 부활이 중국만의 전매특허는 아닌 셈이다. 후이닝 시베이대 교수는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교량이자 자원이 풍부한 중앙아시아를 타깃으로 한 국가 차원의 실크로드 프로젝트가 경쟁적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우호세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실크로드 외교 공세를 펴는 나라들도 있다.
2011년 7월 당시 미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중앙아시아 4개국을 방문하면서 “신(新)실크로드를 건설하자”고 제창했다. 중앙아시아의 대 중국과 러시아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속내가 강했다.
일본도 이미 1997년 ‘실크로드 외교전략’을 제시했다. 중앙아시아 자원의 안정적인 확보가 1차 목적이었다.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에 오르기 위해 우군이 필요한 것도 배경이다. 일본은 2004년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외교장관 채널을 가동했다.
유럽연합(EU)은 2009년 체코 프라하에서 열린 회의에서 신실크로드 계획을 제시했다. 에너지 무역 정보통신 등의 협력을 강화하는 게 뼈대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자체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이 2012년 발표한 신실크로드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실크로드의 교통 허브가 되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2020년까지 교통시설을 2배로 늘리는 사업이 진행 중이다.
한국은 2002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아셈에서 ‘철의 실크로드’를 제안했다. 남북한 종단 철도를 깔고 이어 유럽까지 잇는 철도를 통해 동반 부흥의 길을 열자는 구상에 아셈도 호응했다. 그러나 후일 정권 교체 이후 남북 관계가 악화하면서 한국판 실크로드 프로젝트는 물 밑으로 내려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제안하면서 한국판 실크로드도 되살아날 기틀이 마련됐다. 전문가들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중국의 신실크로드 모두 중앙아시아 비중이 높아 한·중 양국의 조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광진 중국전문기자·경제학 박사 kjoh@hankyung.com
[서울신문]
최근 18년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나랏빚 비율이 4배 넘게 증가했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은 물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회원국 중 부채 증가 속도가 가장 빨랐다. ‘나랏빚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고 있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향후에 재정 ‘불량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의 재정 관련 통계들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GDP(경상 기준) 대비 일반 정부부채(중앙정부부채+지방정부부채) 비율은 통계가 작성된 1990년 이후 1996년이 8.6%로 가장 낮았다. 그러나 18년 뒤인 올해 비율은 4.42배 불어난 38.0%로 추정됐다. 비율 절대치만 29.4% 포인트 늘었다.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나라 곳간 사정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수치다. 이는 GDP가 1996년 5730억 달러에서 올해 1조 3079억 달러로 2.3배 늘어난 반면 정부 부채는 39조 7000억원에서 531조 3000억원으로 13.4배나 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OECD 전체 회원국 평균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72.9%에서 111.1%로 1.52배 증가했다. 속도만 감안하면 우리가 OECD 평균보다 나랏빚이 3배 가까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 재정위기의 근원지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 국가들은 같은 기간 86.4%에서 133.7%로 1.55배 증가했다. 우리나라의 부채비율의 절대치가 낮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최근 우리의 재정건전성이 이들 ‘불량국가’들 이상으로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손쉬운 간접세를 더 걷는 대신 법인세 인상 등 근본적인 대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