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한국을 찾은 로버트 G 발레(
Robert G.
Vallee) 조지 P 존슨(
George P.
Johnson) 회장이 인터뷰를 위해 만난 기자에게 환하게 웃으며 내민 명함 이메일 주소는 독특했다. 그의 이메일 주소 도메인은 ‘
project.
com’이다. 그는 조지 P 존슨 회장이기도 하지만 ‘프로젝트 : 월드와이드’라는 에이전시 네트워크 회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 월드와이드’는 임직원들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는 에이전시 그룹이다. 이 그룹은 ‘월스트리트에 실적을 내보이지 않고, 오로지 우리 실력을 바탕으로 한 의사 결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이득이 되는, 그리고 우리 조직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감’을 모토로 하고 있다. 이 그룹 이름이‘프로젝트’인 것은 결국 그 어떤 것보다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집중해 클라이언트를 빛내고, 자신들은 뒤에 숨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어쩌면 이 같은 마인드 때문에 세계 1위
BTL마케팅(이벤트나 행사와 같이 미디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는 마케팅을 통칭)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조지 P 존슨이라는 사명이 일반인에게는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디트로이트에 본사를 둔 이 회사는 올해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오랜 역사를 지닌 기업이다. 클라이언트 면면도 화려하다.
IBM, 도요타, 크라이슬러, 닛산, 시스코, 세일즈포스닷컴 등. 하지만 이보다 더 경이로운 것은 이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다. 크라이슬러와는 미국에선 77년간 함께 일해왔다. 미국 회사뿐 아니라 그 까다롭다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과도 수십 년간 함께 일했다. 도요타와는 47년, 닛산과는 39년, 혼다와는 36년이다.
발레 회장은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 어떤 매개체 없이 고객과 바로 직접 대면해 마케팅 전략을 짜는 이 분야에 있어서만은 세계 최고임을 자부한다”면서 “그러나 우리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클라이언트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지 P 존슨이 세계에서 가장 잘나간다는 회사들과 수십 년간 신뢰관계를 맺으며 함께
BTL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라고 발레 회장은 자신한다. 다음은 조지 P 존슨이 말하는 본인 모습과 마케팅에 대한 자세한 인터뷰 내용이다.
?조지 P 존슨이라는 회사가 일반인에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간단히 소개해 달라.
▶외조부인 조지 P 존슨이 100년 전에 설립한 이 회사는 처음엔 디트로이트 한 동물원을 개조해 자동차를 전시하는 현재 모터쇼 시초와 역사를 함께한다. 당시 조지 P 존슨이 하던 일은 이를 좀 더 ‘멋지게’ 장식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좀 더 고차원적으로 발전돼 1940년대엔 컨벤션 센터 내에서 제대로 된 모터쇼가 시작됐다. 조지 P 존슨은 당시 디트로이트에 거점을 둔 자동차 회사 3개와 모두 함께 일하며 모터쇼라는 이벤트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회사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조지 P 존슨은 모터쇼 같은 이벤트는 물론 고객과 직접 대면하며 실행하는 모든 종류에 걸친 마케팅 전문 기업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 1998년 세계 최대
IT서비스 회사인
IBM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면서부터는 기존 북미 지역 자동차 위주 포트폴리오에서 조금 더 발전해 현재는 자동차와
IT 분야에 상당히 특화한
BTL마케팅 회사로 자리 잡고 있다. 애드에이지(
AD Age)가 선정한 이 분야 세계 1위 기업이다.
?창업주인 조지 P 존슨 외손자로서 기업에 합류했는데, 장단점이 있을 것 같다.
▶나는 1976년 조지 P 존슨에 입사했고, 20년간 함께 일하다가 1990년대 후반
CEO가 됐다. 나는 사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라 마케팅과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오히려 과거를 통해 미래를 보는 시각을 가질 수 있어 도움이 됐고, 또 글을 많이 쓰는 연습을 한 것이 이 분야에선 상당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창업주 외손자라는 건 사실 부담이다. 사람들이 ‘가족기업’ 구성원에게 갖는 기대감은 엄청나다. 당연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장점도 있다. 이 회사가 정말 우리 회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 아버지는 2005년 자신이 갖고 있던 회사 지분을 우리사주에 돌려줄 정도였다. 이 회사가 존슨이나 발레 패밀리만의 회사가 아니라 직원 모두의 회사임을 보여줬다. 이런 부분들이 모여 세계 최대
BTL 마케팅 회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조지 P 존슨은
BTL 마케팅 분야 세계 1위다. 그러나 이 개념 자체가 어렵다.
▶쉽게 보면 쉽다. 고객의 경험을 브랜드와 결합시키는 작업을 누군가를 매개체로 삼지 않고 직접 하는 것이다. 모터쇼라는 곳에서 고객과 브랜드가 직접 만나게 하고, 신제품 발표회에서 고객이 직접 눈으로 보고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
TV 광고 등도 물론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지만, 우리의 핵심은 ‘직접 고객과 교류하는 것’이다. 디지털 커뮤니케이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 같은
BTL 마케팅 비중이 줄어들지 않을까 했지만, 실제론 더 중요해졌다.
?한번 관계를 맺은 회사와는 정말 오랫동안 함께 일하는 것 같다. 특히 자동차 회사와
IT 회사가 그렇다.
▶우리 포트폴리오 중 90%를 자동차와
IT가 차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과는 정말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서로 신뢰를 쌓게 해 좀 더 특화된 마케팅 전략을 짜게 해주고, 그들을 잘 이해하게 하며, 그렇기 때문에 결과(
output)가 좋아 계속 함께 일하게 되는 선순환 구조를 가져온다.
?그런데 도요타, 혼다, 닛산은 서로 경쟁 관계다. 이런 이들이 한 회사와 일하는 게 가능한가. 특히 신제품 발표회 같은 것은 서로 간에 기밀 유지가 핵심인데.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처지에선 ‘승리하는(
Winning)’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좋은 파트너가 있어야 하고. 그들은 영리한 기업이기 때문에 그런 관점에서만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도 클라이언트가 걱정하는 바를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산업군에 있는 다른 클라이언트를 담당할 때는 아예 사무실도 분리하고, 팀 교류도 철저하게 차단한다. 또 크라이슬러는 디트로이트, 닛산은 테네시주 내슈빌, 도요타와 혼다는 로스앤젤레스가 거점이기 때문에 이들 기업을 담당하는 우리 팀들은 해당 지역에 직접 가서 일한다. 이런 방식으로 오랫동안 일해왔고, 결과는 좋은 편이었다. 결국 핵심은 실력이다.
?한국에 지사를 설립했다. 아시아 공략에 시동을 거는 것인가.
▶그간 조지 P 존슨 비즈니스 대부분은 미국에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클라이언트 주 활동 무대가 미국이었다. 하지만 이제 클라이언트들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우리도 함께 간다. 그것이 우리의 외국 진출 전략이다. 특히 우리 메인 고객사인
IBM은 한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도 한국 내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공략이 목적이 아니라 우리 고객사가 가는 곳에 우리도 가는 것일 뿐이다. 우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회사가 어디 있는지는 의미 없다. 본사는 디트로이트에 있지만, 나는 도요타와 혼다 등이 주무대로 삼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사무실과 인력은 우리 고객사가 있는 곳에 위치한다.
하지만 아시아 시장이 북미에 이은 ‘제2 거점’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겠다. 중국은 이미 세계 최대 시장이고, 일본도 중요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개인적으로 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라고 본다. 한국은 글로벌 기업들이 다수 탄생한 것이 중요도가 높아진 이유다. 삼성이나 현대·기아차 같은. 사실 삼성전자는 애플의 유일한 경쟁 상대로 꼽히는 기업 아닌가. 마켓의 ‘빅 플레이어’가 있는 곳은 당연히 우리에게 중요하다. 또
IT와 자동차를 주된 포트폴리오로 삼는 우리와도 딱 맞는다. 인도네시아는 그 엄청난 인구와 면적 때문에 동남아에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예측을 하고 있다. 이 두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M&A도 시도하고, 사업 영역도 늘려나가겠다.
■
He is…
로버트 G 발레 주니어는 34년간 외할아버지가 세운 조지 P 존슨에서 일해온 이 분야 전문가다. 1994년 회장 겸
CEO(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라 20년간 조직을 이끌어왔다. 임직원이 회사를 소유하는 마케팅그룹 11개가 모여 만든 ‘프로젝트 : 월드와이드’ 회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1976년 미국 드포대학교를 졸업했으며, 경영 활동에 본격 뛰어들기 전에는 주로 고객서비스 분야를 담당했다.
[박인혜 기자 / 사진 = 김호영 기자]